Page 39 - 월간사진 2018년 9월호 Monthly Photography Sep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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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는 패션의 황금기라고 불린다.
1997년 ‘IMF 경제 위기’ 전까지 패션(사진)의 전성기였다. 패션사진가로서 가장 좋
았던 시기였다. 카탈로그의 전성시대였고, 해외 로케이션이 일상이 되던 시절이었다.
시즌이 되면 한 달 내내 해외에 있을 정도였다. 해외에 체류하고 있으면, 서울에서 디
자이너가 옷을 가지고 왔다. 매일 촬영을 했고, 쉬는 날엔 모델 캐스팅을 했다.
우리나라에도 세계화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해외 유명 잡지들이 판권계약을 통해 국
내에 들어왔다. 1992년 <엘르(ELLE)>가 우리나라에 라이선스(License)를 내며 본격
진출했고, 1996년부터는 <보그 코리아>가 발간되기 시작했다. 당시 라이선스지 에
디터들은 의욕이 넘쳤다. 파리에서 공부하다 <엘르>가 국내에 들어온다는 소식을 듣
고 한국에 돌아온 김은정 에디터 같은 유학파들도 많아졌다. 덕분에 패션사진에 글로
벌한 느낌들이 많이 표현됐다. 그중 본사에서 받은 패션사진 속 주인공들은 유명 해
외 모델들이었고, 그런 화보들이 패션산업의 첨병 역할을 했다. 패션사진을 통해 인
지도가 높아진 해외 브랜드 탓에 상대적으로 국내 브랜드의 경쟁력이 떨어지기도 했
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 ‘IMF 경제 위기’라는 직격탄을 맞으면서 패션(사진)계의
성장이 한풀 꺾였다. 내실을 다지지 않고 외적인 부분에만 신경을 쓴 국내 기업들이
하나둘씩 부도로 사라졌다.
지금 봐도 세련된 느낌이 드는 1986-1987 패션브랜드 하리케인의 겨울 컬렉션
1980년대에 비해 1990년대 패션사진은 어떤 면이 달라졌나?
1980년대에는 에디토리얼(Editorial) 개념 없이 카탈로그를 만들었다. 이와는 달리
1990년대는 단순히 찍는다는 것에서 나아가 어떻게 찍을 것인가를 고민하던 시기
였다. ‘디자인의 시대’이기도 했다. 디자이너의 역할이 부각됐다. 좋은 디자이너를 만
나야 사진가의 사진이 빛난다는 걸 인식하기 시작했다. 우리 회사에서 무크와 엘칸토
등의 지면 광고를 담당하였던 백종열 같은 유능한 디자이너가 등장했다.
디지털시대에 돌입하면서 세대가 바뀐 것 같다.
2005년 이후 본격적으로 디지털 작업을 했다. 그렇다고 작업이 특별히 달라지진 않
았다. 필름 현상과 인화 과정만 사라졌을 뿐, 한 장의 사진을 만들어내는 과정은 디지
털이나 아날로그나 비슷했기 때문이다. 당시 유독 디지털 작업을 많이 한 사람이 있
었다. 바로 <보그>의 정용선 부장이다. 스튜디오에 방문할 때마다 컴퓨터로 인물과 제
품사진을 수정하고 있던 모습이 여전히 머릿속에 남아있다.
이때 포토에이전시가 생겨났고, 해외에서 공부하고 온 유학파들도 대거 등장했다.
1990년대 ‘패션사진 황금기’ 때의 모습을 보고 부푼 꿈을 안은 채 유학을 떠났던 친
구들이 돌아온 것이다. 이는 무한경쟁시대를 알리는 신호탄과도 같았다. 패션(사진)
시장이 예전에 비해 그다지 성장을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혜성 같이 등장하긴 했
지만, 아주 새로운 사진을 시도한 것 같지는 않다. 김보성, 김현성, 조선희, 홍장현 등
이 활발히 활동했다. 그런데 또 예기치 못한 상황이 발생한다. 바로 ‘리먼 브라더스 사
태’다. 안 그래도 작은 시장이 더 움츠러들었다.
1985년 촬영한 하리케인의 가을 패션 광고
1988년 오드리 헵번을 콘셉트로 촬영한 패션브랜드 마인(MINE)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