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0 - 월간사진 2018년 9월호 Monthly Photography Sep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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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화 되면서 가장 아쉬운 점은?
모든 것이 디지털화 되면서 사진가만이 갖고 있던 신비감이 사라졌다. 사진가의 위상
이 떨어진 것이다. 필름으로 작업 할 때는 결과물을 바로 알 수 없으니까 전반적인 작
업을 사진가에 의존했다. 그런데 요즘엔 한 장 촬영하면 바로 모니터로 확인할 수 있
다. “사진이 좋네, 혹은 나쁘네.” 같은 즉각적인 피드백은 덤이다. 또한, 사진을 못 찍
어도 괜찮은 시대다. 포토샵만 거치면 완전히 새로운 사진으로 탄생하지 않는가. 사
진가의 능력이 출중하지 않아도 괜찮아진 시대가 된 것이다.
얼마 전 후배를 만났는데, 모 에디터가 촬영을 하다가 “실장님 이만 됐어요.”라는 말
을 했다고 했다. 후배는 그 말이 절망적으로 들렸다고 하더라. 촬영을 더 할지 말지를
사진가가 결정하지 못하는 세상이 된 것이다. 조금 과장을 보태면, 이는 사진가에게
모욕적이고 불쾌한 언사로 들릴 수 있다. 사진가를 기계처럼 여긴다는 것 아닌가.
사진가는 단순히 시안을 재연하는 사람이 아니다. 콘셉트를 면밀히 분석하고, 모델
선정과 메이크업 등 모든 것을 감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데이비드 라샤펠(David
Lachapelle)이나 애니 레보비츠(Annie Leibovitz) 등의 메이킹 필름을 보면 사진가
의 아이디어가 작업에 많이 반영됨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은 여전히 사진가의 역
할이 제한되어 있다. 레전드 패션포토그래퍼가 나오기 어려운 구조다. 우리나라도 크
리에이티브한 패션사진가가 등장해서 리처드 아베돈(Richard Avedon), 헬무트 뉴
튼(Helmut Newton)처럼 사진이 갤러리에 소장되는 일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과도한 후보정이 패션사진의 본질을 가리는 것은 아닐까?
‘좋다’, ‘나쁘다’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부족한 것을 메우겠다는 데 무엇이 문제일까.
하나의 스타일이라고 생각한다. 신사동에 있는 성형외과 광고사진만 보더라도 성형
티가 안 나는 사진과 많이 나는 사진들이 혼재되어 있다. 이를 필요로 하는 고객과 매
개체가 있기에 과도한 후보정을 하는 것일 테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기법의 완성도
1994년 촬영한 세련된 감각의 ‘엘칸토’ 광고
가 떨어지면 유치하게 보일 수 있다는 점이다.
예전 패션사진가들의 작업을 다시 조명하려고 해도 자료를 찾는 게 어렵다.
패션사진 아카이빙을 시도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상업 사진가 수명이 짧으니까,
또 한국은 일회성 작업이 주를 이루니까 사진가 자신이 보관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
던 것 같다. 게다가 아카이빙을 할 때 사진 한 장 당 가격도 결정되어 있지 않다. 그러
니 예산을 책정하는 것도 어렵다. 그나마 요즘엔 사진이 디지털화 돼서 아카이빙이
쉬워지지 않았나. 점차 나아질 것이라고 본다.
패션(사진)이라는 게 너무 그들만의 세상이 아닌가?
고급 브랜드를 놓고 본다면 ‘그들만의 리그’인 것은 맞다. 의외로 패션산업 시장의 규
모가 작다. 누구는 나의 삶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데미안 허
스트(Damien Hirst)를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그의 작품 가격은 수십억 원이지만,
우리 삶과는 큰 관련이 없다. 단지 그의 작품을 감상하고, 그로부터 파생되는 또 다른
미술을 즐기면 되는 것이다.
1990년 한섬의 패션브랜드 ‘SYSTEM’ 광고 비주얼 1996년 촬영한 캐주얼 브랜드 ‘GAG’ 화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