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4 - Choi wungsub Success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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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뒤  안  가리고  찾아오는  고민과  고통은  기도의  자리로  들어가는  심령을  우습게  허물어버리고,
               나를  기다리고  있는  암담한  현실만  보였기  때문이다.  나  혼자라면  선교국을  옮길  수도  있는
               문제였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이미  한국에서  세  가정이  들어와  나와  같이  공동사역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에 대한 비자까지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기도가  도저히  안  나왔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성도들에게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염려하지  말고  기도하라고  가르쳤던  나였지만,  막상  나에게  닥친  현실의  문제  속에
               갇히자  기도의  입이  막혀버린  것이다.  믿음이  부족한  선교사였는지도  모르겠다.  비자기간이
               다가올수록  압박이 더욱  커져갔고,  하루빨리  비자의 그늘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사실  컴퓨터학원은  내가  할줄  아는  각종  프로그램을  가르치는  일이었고,  그것을  통해서  사람들을
               접촉하여  전도의  통로를  만들고자  하였기에  사업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학생들이  증가하고  교사
               채용이  늘어나면서  학원의  규모가  커졌을  뿐이지,  적어도  나에게는  사업의  개념이  아니었다.  단지

               복음을  흘려  보내기  위한  하나의  통로였던  것이다.  단지  컴퓨터를  가르쳐  주는  교육기관으로만
               여겼기  때문에  이런  학원이  문제의  소지가  되리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운영의  묘를
               살리지  못한  탓에  세무서로부터  학원  문을  닫으라는  경고를  받으면서  나의  모든  포부가
               무너졌다고  할까!  이제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비자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앞으로 이 땅에 거주하는 것 자체가  불투명해진  것이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린도전서 10:13)
               아멘!  감사하게도,  회사를  임시로  닫은  후에도  비자를  받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이유인  즉,
               부처간에  네트워크가  없다  보니  회사에  대한  정보를  외무부에서  전혀  모르고  있어서  비자갱신에
               문제가  없었다.  어디까지나  오래가지  못하는  한시적  돌파구였기  때문에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제르바이잔에  가져다  팔  만한  한국의  중소기업  제품들을  눈에  불을

               켜고  찾게 된 것은 이런  상황들 때문이었다.


               사업과
               선교의 사이
               정체성에 대한  고찰

               한국의  컴퓨터  제품들이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  그때부터  컴퓨터  제품과  IT 제품들을  팔아보고자
               사력을  다했다.  비자라는  난관을  넘어서고자  시작한  사업은  결코  쉽지  않았다.  물론,  처음부터
               쉬우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도  예상했던  것보다  시련이  너무  혹독하게  다가왔다.  당장
               누구를  만나서  사업  이야기를  하고,  누구에게  물건을  팔아야  하는지가  막막했다.‘사업’이라는  말
               은  나에게  ‘산’  그  자체였다.  고객이  없으니  날마다  거리를  헤매고  다니는  것이  일이었다.  이  가게
               저  가게    기웃거리고,  거리의  광고판에  적힌  전화번호로  전화를  해서  사람들을  찾아  다녔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에  들어가려고  하면  왜  그리도  서럽고  막막하며  눈물이  앞을  가리는지,

               세상에서 가장  ‘빽’ 좋은  아버지를 둔 아들이 맞기나 한가, 스스로가 참 한심스러웠다.
               ‘이리도 방황하러 이곳  이국만리로 날아왔던가!’
               ‘사업을 위해서 선교사로  온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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