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5 - Choi wungsub Success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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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가 이 낯선  땅에서 이 낯선 일로  헤매야 한단  말인가?’
               쏟아지는  눈물을  수없이  삼켰다.  비자기한이  다가올수록  조여오는  압박에  대한  서러움과  고통은,
               아마  아내도  같이  동역했던  사람들도  몰랐을  것이다.  그래도  피할  수  없다면,  부딪혀야  했다.
               가야만  하는  길이라면  눈물을  흘리더라도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런  ‘깡’이  어디서  나왔을까,

               요즘  생각해보곤  한다.  발  등에  떨어진  불  앞에서  기도도  못하는  부족한  선교사였지만,  그래도
               선교사였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어떤  악조건  속에서도  복음의  씨앗을  뿌리고,  꽃을  피워온  세상
               모든  선교사들,  과거  모든  선교사들이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그  ‘질김’이  나에게도  있었던  것
               같다. 그 덕분인  것  같다.
               수없이  만남을  청했고,  수없이  만남을  거절당했다.수없이  서러움을  겪었으며,  그때마다  이
               서러움이  그냥  서러움으로  끝나게  하지  않으리라  다짐하곤  했다.  남이야  남이니까  그렇다
               치더라도,  아침에  외출을  할  때나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  아내의  잔소리와  원망  담긴

               눈초리는  더욱  감당하기  힘들었다.  교회에서  강도사로  일하던  시절,  터키에서  선교사로  사역하고
               있던  지금의  아내를  인터넷으로  만나  교제했다.  얼굴도  안  보고  결혼하기로  하고,  딱  한  번  만나
               후원하는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렸던  3 살  연하의  여인,  그녀  또한  얼마나  불안했는지  잘  안다.
               선교사  남편이  성경  들고  시내를  돌아다니며  말씀  한  자라도  더  전해야  하는데,  제품  전단지
               들고  업체를  찾아  다니고  있으니  전도사  출신  아내의  속이  얼마나  탔을까!  저녁마다  서재에

               엎드려  드리는  기도와  새벽마다  부르짖는  기도는  사실  기도가  아니라,  통곡이었고  이러한
               현실에서 벗어나게 해달라는 간절한 몸부림이었다.
               파트너를  만나러  다니는  일에서  구매자를  만나  제품을  소개하고  계약까지  하도록  설득하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계약할  듯  말  듯하며  사람  피를  말리는  사람들,  대답  못할  것을
               알면서도  고의적으로  질문을  퍼부어  대는  사람들,  이들을  하루  종일  상대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몸은  녹초가 되고  기도가  한숨이 되어 흘러나왔다.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이런  모습으로  이끌고  가십니까?  제  뜻입니까?  아니면  당신의  뜻입니까?”

               기도  속에서  사투를  벌이며  살아야  했다.  이상하게도,  그럴수록  기필코  성공하여  비즈니스의
               선교의 모델이  되리라는  마음  속  목표가 더욱  선명해지고 더욱 뜨거워졌다.
               어려운  사업  속에서도  나는  하나의  행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천금을  주고도  살수  없는  언어의
               훈련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  대화하는  동안  현지인들이  사용하는  방언과  러시아어를
               별도로  배우지  않고도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실로  엄청난  자산이었다.  혹독한  훈련의  열매로
               언어장벽이  해결된  것은  어찌  보면  밑진  장사는  아니었던  것도  같다.  나의  유창한  현지어는  많은

               이들을  친구로  맺어주었고,  그들  대부분  내가  비즈니스로  세워지는  데  멋진  가교  역할들을
               해주었기 때문이다.  나중에는 그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의  마음마저  들었다.
               비즈니스의  지지부진과  더불어  또  하나의  고민이  보태졌으니,  바로  내  신분에  관한  정체성
               문제였다.
               ‘내가 장사를  하러 여기에  왔는가?’
               ‘꼭  이렇게 해야  선교를 할 수 있는가?’
               ‘다른 이들도  모두 이런 형편이란 말인가?’

               ‘비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이것 밖에  없단 말인가?’
               정체성  문제는  여전히  무거운  과제로  남아있었다.  선교사의  신분으로  선교지에서  사업한다는
               것에  대해 나를 후원해주던 한국교회와  성도들이  문제  삼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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