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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사와 함께 보는 정대위 목사 이야기
1976.11.21. ~ 1983. 8. 21. 오타와한인교회 담임(설립)목사
이 시기 오타와의 한인 사회는 토론토, 몬트리올 등 캐나다의 다른 도시
들에 비해 그 규모가 작았다. 1959년 김영기 신부가 Ottawa General
Hospital의 원목(chaplain)으로 부임하고 1965년에 그를 회장으로 한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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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발족하지만 한자리에 모이기조차 쉽지 않았던 그 당시 대부분 오타와
한인 크리스천들은 캐나다 교회에 출석하며 각자의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
다. 그러던 중 한국 가정들이 집에 모여 성경공부를 시작하면서 한인들 사
이에 모국어로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있기를 원하는 이들이 점차 늘어났
다. 그런 소망은 정대위 목사가 칼튼대 교수로 오타와에 부임한 후 구체적
으로 실현되었다. 정대위 목사의 지성, 개방적인 신학, 선비적인 인품은 오
타와의 크리스천들을 하나로 묶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1976년, 정대위 목사는 한국에선 제자였고 토론토 연합교회에서 재회했
고 다시 오타와에서 만난 오준수 장로를 비롯, 몇몇 오타와 한인 성도들과
함께 한국어로 드리는 예배를 구상했고, 그해 11월 오타와의 Glebe St.
James United Church 소예배실에서 성인 43명이 모여 정 목사의 인도로 첫
예배를 드리면서 교회가 탄생하게 된다. 이들은 자신들의 모임의 명칭을 “
오타와 한인 크리스찬의 모임 (Ottawa Korean Christian Fellowship)”으로
했다. 정기예배와 교제, 복음 전파와 사회 봉사를 위한 기독교인의 ‘모임’으
오타와한인교회의 첫 세례식 후
로 스스로의 정체성을 규정했던 초기 설립자들은 이때만 해도 이 모임이 정
1983년 4월 10일
정대위 목사의 집례로 식 교회가 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세례식을 거행됐다.
밑에서 둘째줄 중앙이 정대위 목사 그러던 중 오타와 한인 사회가 조금씩 성장해 가면서 매주 모이는 한인
교회의 필요성이 절실하게 요구되었고, 정대위 목사의 수락으로 설립 제5
주년이 된 1981년 11월 8일 부터 매월 두 번 격주로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
으며, “오타와 한인 크리스찬의 모임”을 “오타와 한인교회” (Ottawa Korean
Community Church)로 그 명칭을 변경하게 된다. 이후 1983년에 최초 당회
원이 선출되고, 정대위 목사는 1대 당회장이 된다. 1983년 4월 10일, 교회
설립 후 최초 세례식이 정대위 목사에 의해 거행되었다.
이런 오타와한인교회의 설립 과정에서 볼 때, 평신도들의 역할이 눈에 띈
다. 아마도 정대위 목사는 칼튼대에서의 교편을 우선 사역으로 보며, 오타
14) 이태은 <한인이민사>, p.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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