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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사와 함께 보는 정대위 목사 이야기
Metraux)의 비판을 정 목사가 수용했기 때문이다.
알프레드는 토론토 대학에서 정대위 목사가 쓴 <한국 교회 분파론>을 신
통한 공부가 아니었다고 비판한다. 그에 의하면 한국 교회의 성격은 인류
학에서 찾아야하며 따라서 서로 완전히 격리된 몇 개의 문화권 안에서 이
루어지는 종교적인 현상들을 비교 연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영향으로
말미암아 정대위 목사는 ‘주관적인 신앙을 연구하는 신학’으로부터 ‘신앙 형
태를 객관적으로 연구하는 인류학과 비교종교학’으로 급격하게 학문적 목
표를 전환한다. 11)
예일대에 입할할 수 있었던 데는 리처드 니버(Richard Niebuhr) 교수의
도움이 컸다. 이 두 사람의 조우는 이미 토론토대 유학시절 리처드 니버가
토론토대에 강연차 왔을 때 이루어지는데, 정대위 목사가 유학하던 때 그
는 종교학 학과장이었다. 리차드 니버는 <그리스도교와 문화>라는 기독
교사회학의 고전을 쓴 미국 출신 신학자로 정대위 목사가 토론토대에서 작
성한 석사학위 논문과 유사한 제목의 <교회 분열의 사회적 배경>이라는 유
명한 책을 썼다. 따라서 정대위 목사가 그에 대한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
었다. 당시 리처드 니버가 가진 명성과 영향력을 알 수 있는 일화 하나를 소
개한다.
그 때만 해도 유학생에게 주는 미국 비자 발급 방침은 매우 굴욕적이었
는데, 중국인과 한국인은 부부 동반 유학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런 방침으로 인해서 토론토에 있던 부인이 미국으로 오지 못하는 것을 정
대위 목사는 니버 교수에게 말한다. 그러자 니버는 “미안해.미국은 야만국
이야” 하고 한 마디를 뱉었다. 그것이 전부인줄 알았다. 다음 날, 토론토 주
재 미국 총영사로부터 정대위 목사는 직접 전화를 받는다.그리고 부인의
비자를 신청한 적도 없었던 정대위 목사 부인은 미국 비자를 얻게 된다. 그
때의 일을 정대위 목사는 이렇게 썼다:
“사실 이런 일은 니버 교수가 취한 행동 때문에 이뤄진 것이다. 뒤
에 안 일이지만 그는 워싱턴의 국무성을 전화로 불렀다는 것이다.
11) 필자는 개인적으로 이런식의 구분을 동의하지 않는다.역사에서는 ‘만약’이라는 말을 쓸 수 없다고 하지만 목
사이자 조직신학과 영성신학을 전공한 나로서는 만약 정대위 목사가 전공을 바꾸지 않고 교회사나 성서학을
선택했다면 한국 교회에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었으리라 하는 추측에 많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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