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1 - 죽산조봉암기록
P. 101
는 동안에 불란서 경찰이 달려와서 전부를 체포하였다가 일본 경관은 석
방하고 조 씨와 이 씨만 체포하였는바 이 씨는 일본 경찰의 요구로 즉시
석방되어 어디로 도망가 버리고 조 씨만 불란서 공보국에서 하루 동안 취
조를 받았는데 조 씨는 자기는 중국인이라고 격렬히 변명하였으나 결국
영사관 당국의 요구로 영사관으로 인도되어 연일 엄중한 취조를 받고 있
다는데 이곳에서 취조가 끝난 뒤에 조선 경성으로 압송될 터로 대략 10월
중순경에 압송되리라 한다.
■ 10월 10일, 프랑스 조계 공동국 경찰에서 일본 영사관 경찰로 넘겨졌다.
■ 11월 26일, 일본 영사관 경찰로 넘겨진 조봉암과 그의 동지들은 11월 26일
까지 심문을 받았다.
■ 11월 27일~12월 3일, 7명의 동지와 함께 고국으로 가는 연락선에 실려
12월 3일 인천항에 도착했다. 그 상황을 당시 신문은 다음과 같이 보도하
고 있다.
“공당의 요인(要人) 조봉암 압래”
(「조선일보」, 1932년 12월 3일 석간 7면)
제1차 조선공산당 조직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상해를 중심으로 그 후
조선공산당원으로 해외 연락을 해오던 조봉암은 몇 달 전에 상해 불란서
조계에서 검거되어 일본 영사관에 인도되었다. 그동안 영사관 경찰서에
서 취조를 받던 중 대략 조사가 끝나 지난달 하순 상해를 떠나 조선에 보
100 竹山 조봉암·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