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6 - 죽산조봉암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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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해에서 사십여 경관에 체포
그날 우리 몇몇 동지가 불란서공원 안에서 만나기로 약속되었기 때문에
나는 일부러 중국 의복을 입고 약속한 정각에 공원 동북편 길가 벤치로 갔
다. 거기에는 이미 서OO 군이 와서 앉아있었고 서군의 말에 의하면 정모
는 벌써 왔다가 지금 잠시 볼일이 있어서 공원 밖으로 나갔으니, 곧 돌아
오리라는 것이었다. 나도 서군과 같이 벤치에 앉아서 담배를 피우고 있으
려니까 나이 삼십 남짓해 보이는 중국복 입은 청년이 내 앞으로 다가서며
중국어로 담뱃불을 빌려 달라고 하기에 나는 아무 말 없이 담뱃불을 내어
주었더니 그자는 담뱃불을 붙이는 체하면서 내 손을 슬금슬금 훔쳐본다.
좀 기분이 나빴지만 그냥 무심히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러자 난데없이 일본말로 '고꼬다요'(ここだよ 여기다) 하는 소리가 들
려서 정신이 번쩍 들어 사면을 둘러보니 벌써 일본 놈 서넛이 내 앞에 서
있었고 전후좌우 양복 입고, 사진기를 어깨에 둘러멘 놈들이 내 쪽을 향
해서 모여들고 있지 않은가.
일이 잘못된 것을 직감한 나는 사면을 다시 훑어보고 즉시 행동을 취할
것을 생각하는 판에 공원 밖으로 나갔다는 정모가 내 앞을 가로막고, “박
철환 동무 잠깐 앉으시죠” (위에서도 말했지마는 나는 해외에서는 박철환
이라는 이름으로 행세했었다.) 하자 나는 벌써 왜놈 가운데 둘러싸여 있
었고, 불란서 형사 한 명이 내 손목을 잡고 있었다. 불란서 형사와 문답이
시작됐다. 중국인 형사가 중국어로 통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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