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 - 죽산조봉암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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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반전입니다.
물론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습니다만, 세계사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우리 성과의 근간에는 죽산 선생이 혼신을 바쳐 현실화하고자 했던 신생
독립 대한민국의 개혁정신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에 대한 투자의 중
요성, 그리고 반드시 나아갈 길을 위해서라면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추진력과 한결같음. 그것이 이후의 우리 역사 저변에 바탕이 되는 자산이
되어 주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중요한 기반을 만들기까지 죽산 조봉암 선생의 삶은 결
코 만만치 않았습니다. 일제 강점기 시절에는 독립운동에 청춘을 바쳤고,
독립 이후에는 사람들의 소소한 행복에 힘이 될 수 있는 실천적인 대안을
만들어내기 위해 건국과정에 참여했지만,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국회부
의장으로서 가장 늦게 피신하는 바람에 아내가 납북되는 등 개인과 가정
은 힘든 고난을 온몸으로 받아내야만 했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선생의 올곧은 의지와 희망은 전 국민적인 지지를 받았
습니다. 1956년 진보당을 창당하고 출마한 3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30%
를 넘는 지지를 받으며 당시 이승만 대통령에 대항할 수 있는 강력한 지도
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독재 정권에게 경쟁자는 제
거의 표적이 될 수밖에 없었고, 결국 1959년 이른 바 ‘진보당 사건’이라는
사법살인으로 인해 서거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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