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2 - 전시가이드 2020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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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연 컬럼
지난 2007년 산업자원부와 KOTRA는 2008 사라고사 엑
스포 한국관의 전시 방향을 전통과 첨단기술의 융합으로
정하고, 주제 전시, 공연, 애니메이션 상영 프로그램 등을
1년 넘게 준비했다. 한국관(1550㎡) 주전시관을 가득 채
운 작가의 미디어아트 설치 작품 <물과의 대화>는 원삼
국시대의 토기(높이 1m) 총 28개 안에 영상 프로젝터, 컴
퓨터, 적외선 카메라를 내장하고 그 위에 이면투사용 스
크린을 설치한 장치로 구성되었다. 화면 위로 손을 흔들
면 적외선 탐지기가 이를 감지하고 해당 영상 콘텐츠가
투사되는 방식이다. ‘물은 생명의 근원이다’라는 주제를
바탕으로 물과 관련된 한국 고유의 역사와 문화, 문학, 미
술, 스포츠, 산업 등을 소개했다. 세계 박람회(EXPO)답게
다양한 문화권의 관람객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언어로 영
상을 감상할 수 있도록 준비되었다.
물과의 대화 2008
기억해야 할 전시
한 “설명적이지 않으면서도 직관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시적 표현 기법”
오창근의 <물과의 대화> 임을 언급하였다. 그 중에서도 카메라를 통해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물에 비
친 것처럼 보이도록 만든 영상물이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뿐만 아니라 특히 어
린이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고 한다. 이처럼 관람객이 자기 자신을 영상으
로 투영함으로써 작품의 일부로 만드는 기법은 작가가 지금까지도 애용하는
글 : 이주연 (경인교육대학교 교수)
것으로, 소통과 참여를 위한 인터렉션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에서 눈여겨
볼 것은 선사시대에서 역사시대로 넘어가는, 이전보다 안정적인 도자기 생산
2008년 광우병 사태로 국내외 모두 불안정했던 시기에 우리가 미처 주목하 이 이루어지는 원삼국시대를 배경으로, 오랜 역사와 전통을 보여주는 하나의
지 못하고 안타깝게 놓친 전시가 있어 이를 소개하고자 한다. 우리나라뿐만 결정적인 이미지로서 토기를 선정했다는 것이다. 또한 여기에 영상으로 물을
아니라 영국, 스페인 등 유럽 국가들도 광우병 사태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이 추상화함으로써 디지털과 토기의 융합은 관람객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었
렇게 광우병에만 모든 관심이 쏠리던 어수선한 시기 스페인의 아라곤 주 사 을 것이라 생각된다.
라고사(Zaragoza) 시에서는 ‘물과 지속가능한 개발’(Water and sustainable
development)을 주제로 스페인 정부, 아라곤 지방정부, 사라고사 시, 민간기 디지털 강국으로서, 또한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닌 문화예술 강국으로서 우리
업 등이 투자한 세계박람회(World Expo Zaragoza 2008. 6.14.~9.14.)가 93 나라의 이미지를 형상화해서 큰 관심과 반향을 불러일으켰으며 전시기간 동
일간 개최되었다. 바로 이 엑스포 박람회장 국제전시구역의 한국관에 오창근 안 70만명의 관람객이 한국관의 주제 전시를 다녀갔다고 한다. 4년 뒤 2012
작가의 작품이 전시되었다. 년 여수에서 열린 여수 엑스포를 위해서라도, 전시의 규모로나 준비 기간을
“물을 영어 ‘water’나 스페인어 ‘agua’로 번역하지 않고 대신 한국어 ‘mul’로 소 보더라도 2008년 사라고사 엑스포에서의 한국관 전시에 우리가 좀 더 관심
개하는 <물과의 대화> 작품의 시작부터 손에 잡히지 않는 물을 소중히 여기 을 가졌어야 하지 않았나 하는 마음이다. 이에 지나갔지만 기억해야 하는 전
자는 마지막 결론까지 철학적 숙고의 산물이었다”고 작가는 전한다. 이는 또 시로 이 작품을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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