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7 - 전시가이드 2020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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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라우센버그, 침대(1955), ⓒADAGP-ARS






            게 발생할 수 있는 변화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백색 페인팅에 이어 신문       디까지를 회화라고 불러야할지 난감하다. 소재들이 그림 밖으로 튀어 나와 있
            이나 잡지를 덕지덕지 붙인 위를 까맣게 칠해버린 블랙 페인팅, 역시 여러 재      음에도 회화처럼 벽에 걸려있고, 아예 그림에서 솟아나 바닥에 놓여있기도 한
            질의 종이들을 콜라주 한 위에 칠해진 붉은 페인트와 자유롭게 흘러내리는 물       데, 또 분명 캔버스 위에 물감으로 그린 흔적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라우센버
            감들이 눈에 띄는 레드 페인팅을 선보이며 미국에 <추상표현주의> 붐을 가속       그는 회화의 한계성을 계속해서 실험하며, 사실 회화나 조각 둘 중 하나가 아
            화시켰던 라우센버그는 그림이 가지는 형태에서 벗어나는 것에 멈추지 않았         니라 그것이 결합된 새로운 형태의 예술을 창조해내었다.
            다. 프랑스 파리의 미술학교에서 만난 아내 수잔웨일과 함께 당시 살았던 좁
            은 아파트에서 모델의 누드와 식물의 형체를 이용해 사진을 찍고, 마치 x-ray    로버트라우센버그의 글로벌 브랜드 지명도는 대한민국에서도 빛을 발했다.
            처럼 빛을 받은 부분이 푸르게 반전되어 찍히는 <청사진기법>으로 인화했다.       그의 개인전이 서울의 ≪페이스 갤러리≫에서 2019년 9월 19일부터 11월 9
            몽환적이고 신비로운 라우센버그의 블루프린트 작업들은 아내와 함께 협업          일까지 개최되었다. 1983년 제작된 드로잉 13점을 선보였는데, 페이스갤러
            한 작품들이며, 저명한 사진전문 매거진 【라이프 지】에 실리기도 했다. 라우      리 측은 "그동안 한 번도 전시된 적이 없는 작품들을 최초로 공개한다"고 밝
            센버그는 점차 예술의 재료와 방식의 한계를 넓혀가기 시작했다.라우센버그         혔다.드로잉들은 잡지와 신문에서 가져온 이미지와 함께 패브릭처럼 일상에
            는 수많은 콜라주 작품을 남겼는데, 신문과 잡지에서 가져온 이미지들을 자유       서 흔히 발견되는오브제를 병치하던 라우센버그의 대표적인 스타일을 기반
            롭게 붙이고, 당시 앤디워홀이 이미지 무한 복제를 위해 즐겨 사용했던 <실크      으로, 전시 작품들은 그의 작업의 중요한 요소인 ‘격자형식’을 강조하고 있다.
            스크린 기법>을 사용하기도 했다. 워홀이 동일한 이미지를 반복해서 찍어내        격자무늬 위에서 재구성된 이미지들은 1980년대 후반의 인터넷 혁신을 암시
            어 작가의 익명성과 대량 생산되는 이미지에 대해 이야기 했다면, 라우센버그       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작고하기 1년 전인 2007년 6월 플로리다주캡티바 섬
            의 실크스크린은 여러 이미지들과 중첩되어 아래 이미지를 투영하면서 새로         에 위치한 ≪라우센버그 스튜디오≫에서 발견한 이 희귀한 드로잉들은 작가
            운 이야기를 만들어내기도 하고, 이미지를 모호하고 복잡해 보이게 만들기도        가 즐겨사용했던 솔벤트트랜스퍼 이미지, 패브릭, 수채화, 연필 등의 다양한
            했다. 이런 라우센버그의 콜라주 작업들은 지속해서 그의 작업 방식에 영향을       재료들이 쓰였다. 여기서 한가지 짚고 넘어갈 사안이 있다. 물론 우리 화단의
            끼친다. 잡지나 신문, 자신이 찍은 사진과 실크 스크린, 물감과 다양한 재료들     추세가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 알려진 유명 작가의 고유한 스타일
            을 혼합하고 함께 두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그는 점점 대담하고 적극적으       과 전혀 다른 양식의 ‘미공개 작품’이 발견되면 일단 진본인지 의심부터 하고
            로 일상의 여러 소재를 작품에 혼합하기 시작했다.1955년 발표된 『침대』는 라    본다. 그렇지만, 외국의 유명세가 붙은 작가의 경우에는 오히려 그 ‘희귀 성’ 자
            우센버그의 명성을 높여준 작품이기도 하다. 당시 라우센버그는 캔버스를 살        체에 초점을 맞춰 대중들의 관심을 유도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 화단의 건전
            돈이 없어 캔버스 형태로 짠 나무 안에 자신이 덮고 잤던 이불과 베개를 부착      한 경쟁력을 고취시키기 위해서는, 무조건 ‘남의 떡이 더 커 보이는’상대적 평
            한 뒤, 그 위에 물감을 발랐다. 개인적이고 사적인 일상의 소재가 캔버스 안으     가절하는아무래도 자제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아무쪼록 라우센버그처럼끝
            로, 그 자체로서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라우센버그는 이렇게 회화와 오브       없는 상상력으로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줄 아는, ‘새로운 정신’을 추구하는 신진
            제가 결합된 형태를 <콤바인 페인팅>이라고 직접 이름 붙이고 무한한 상상력       작가들이 배출되어 척박한 우리 화단의 화수분이 되어 주기를 바랄 뿐이다.
            으로 다양한 실험과 시도를 하기 시작했다. 콤바인 페인팅들은 어디서부터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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