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5 - 전시가이드 2020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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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희정당 단청














            술가이자 개념미술가인 솔 르윗(Sol Le Witt, 1928~2007)을 소개하고 싶다. 그의 작품 중 'Wall Drawing'
            이나 'Color Bands' 에서는 단청적인 요소가 다분한 것이 특징이며 그가 즐겨 썼던 화려한 원색의 사용과
            반복은 우리 단청에서 쓰이는 오방색이나 색조의 반복과 매우 비슷함을 볼 수 있는데 그는 기하학적인 도
            형을 사용하면서 반복성과 규칙성을 가진 유동적인 형태들을 표현하여 단청에서 문양의 반복성과 규칙
            성, 유동적인 형태라는 부분에서도 공통점이 많음을 볼 수 있다.
            단청의 작업 과정은 협업과 분업이 철처히 이루어진다. 채색도 색깔별로, 단계별로 협업과 분업으로 이루
            어진다. 솔 르윗이 조수들과 함께 벽에 작업하는 '협업적 노동' 방식은 마치 단청의 작업 방식과도 같은 개
            념이나 다름없다. 그는 6.25 사변 때인 1951년 6월부터 약 1년 동안 미군으로 참전하였다고 한다. 전쟁통
            이라고는 하지만 우리나라의 문화와 단청을 조금이라도 경험했던 것이 아닐까 추측해 보니, 문뜩 우리나
            라 사람보다 단청과 오방색을 더 사랑했던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또한 그는 개념미술을 시도하면서 작품의 개념이 제작 과정보다도 우선하고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자신
            이 제작한 드로잉 작품을 그의 조수들이 다른 갤러리에서 똑같이 모방해 그려도 이를 용인했다. 전시가
            끝나면 자신의 드로잉 작품을 곧바로 페인트로 칠해 지워버리는 경우도 있어서 너무 급진적이고 극단적
            이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이 점에서 단청과는 같은 점과 다른 점이 있다. 같은 점은 개념을 우선하며 모
            방을 용인한다는 점이다. 우리 단청은 전통의 계승이라는 큰 틀 속에서 대부분 도제식으로 전수를 받다보
            니 스승의 사상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아 스승의 방식을 그대로 따라서 전승하였다. 그래서 문양도 색조도
            거의 같았고, 작업의 개념이나 방식이 거의 똑같아도 용인되었다. 다른 점은 우리 단청은 솔 르윗의 작품
            처럼 대중에게 보여주는 단순한 전시라는 개념에서 보여주고 지워버리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햇빛과
            비바람, 병충해로부터 목재를 보호함으로서 건물의 수명을 늘리고, 보기싫게 갈라진 목재를 카무플라주
            (camouflage)하려고, 궁궐이나 사찰의 권위를 장엄하기 위한 랜드마크(landmark)의 의미로서 단청을 하
            였기 때문에 지운다는 개념은 애당초 없었고 오히려 오랫동안 두고두고 보며 소중히 지켜온 것이다. 그
            러므로 오랜 세월동안 강한 햇빛과 추운 비바람에 변색되고 박락된 단청이야말로 진정한 단청의 참 멋을
            느낄 수 있다. 역설적으로 오래된 단청이야말로 더 현대적이라 할 수 있다.                                         창덕궁 희정당 단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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