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5 - 전시가이드 2020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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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나비 120×90cm 혼합재료 2019
‘강렬한 평범함’에 대한 단상 채의 구사는 ‘내가 입은 옷이 바로 나’라는 식의 자의식을 표출하는 여자의 패
꽤나 뜬금없는 일이다. 박선영의 종이 조각에서 왜 다자이 오사무가 떠올랐는 션처럼 당당하다. 그 당당함이 주는 통쾌함은 단순히 색채 감각에 그치지 않
지 모르겠다. 그의 수필집에는 놀랍게도 두 아이의 아빠로서 소박하고 다정다 는다. 꽃ㆍ나무ㆍ호랑이 등의 명확한 소재성, 규방문화의 상징인 바느질이라
감했던 다자이 삶의 단편들이 오롯이 담겨있다. 매일 같이 폭탄이 떨어지고 방 는 행위를 드러내는 시침선, 그리고 크리스탈 장식까지 박선영의 작업은 무엇
공호로 대피하는 것이 일상인 전쟁 중에서도 다섯 살 난 어린 딸에게 바다를 보다 ‘장식적’이다. 하지만 장식성은 왜 아직도 본질이 아닌 효과나 여분이라
보여주고 싶은 아빠의 마음, 그 마음을 배반하는 문학인으로서의 다자이는 송 는 선입관과 싸우면서 여전히 마이너리티에서 그 예술적 존재감을 증명해야
두리째 자신의 삶을 소설과 사회에 내던졌다. 전쟁과 패전이라는 특수한 상황 하는 것일까. 클레멘트 그린버그가 모더니즘 회화의 발전논리로 평면성을 설
은 섬세한 촉각을 가진 예술가가 현실과 예술을 균형 있게 유지하는 것을 불가 파했던 1940년대 이후 그린버그의 논의들은 수없이 비판받고 의심되어왔음
능하게 만들었고 절규하고 쓰러지고 미치지 않고는 버틸 수 없게 만들었다. 폭 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예술의 조형성은 평면성, 추상성에서 얻어진다는 믿음
탄과 아이, 바다와 평야, 추억과 흥분...수필집을 읽고 나서야 비로소 난 주체할 은 일종의 권위가 되어 우리를 유령처럼 지배하는 것은 아닐까. 박선영의 작
수 없이 서글퍼졌던 것 같다. 아주 그럴듯한 일상을 접했을 때, 너무나 평범해 업은 오히려 그 장식성을 온몸으로 드러내고 강화하는 전략을 취한다. 장식성
서 특별한 행복을 만났을 때, 문득 궁금해진다. 일상의 불균일성을 넘어서 유 이야말로 그녀의 무기다.
지되는 항상성에 대하여, 기쁘고 노엽고 슬프고 즐거운 감정들의 기복이 가져 박선영이 자신의 작업에서 의도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바느질이야말로 전통
오는 삶의 미세한 균열들을 다시 메워낼 수 있는 그 힘에 대하여, 끊임도 없고 적으로 여성의 영역이지만 페미니즘에 의해 새롭게 발굴된 영역이다. 여성
쉼도 없는 삶의 호흡과 함께 지속되는 그 운동들의 아름다움에 대하여 말이다. 적인 것으로 일반화된 미의식에 대한 회고적 그리움이 아니라 촘촘한 시침
“나는 내가 꿈꾸는 세상에 살고 있다. 그곳에 아이와 남편과 집과 내가 꿈꾸는 선이 증명하듯 여성적 바느질이라는 행위를 전면에 내세운, 바느질을 드러
것들이 있다. 그곳은 내 꿈의 세계이자 내가 살고 있는 이 공간이다.”- 박선영 내는 바느질인 것이다. 다만 그 자의식은 거창한 목표나 대의에 봉사하지 않
는다. 그저 자신의 작품 안에서 그 존재감을 드러내며 그것은 미적 리듬감으
‘장식적인’이라는 수식어 앞의 당당함 로 환원된다.
박선영은 강렬한 색채로 우리의 눈을 사로잡는다. 얇은 미농지로 한번 감싸
서 바느질했음에도 불구하고 노랑, 분홍, 파랑, 주황의 비비드한 형광색이 만 “나의 행복한 일상을 고스란히 담아 작품은 만들어지고 다듬어진다. 내 작품
들어내는 색채의 리듬감은 보는 이를 들뜨게 만든다. 현란하지만 정교한 색 을 보는 모든 사람들에게 행복이 담겨지길 기대하면서...”- 박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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