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6 - 전시가이드 2021년 03월 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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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청과 컨템포러리 아트
종묘 정전 전경
가칠단청 그러면 가칠단청을 찾아서 종묘로 가보자. 종묘는 조선이 유교 국가로서 건
국의 기틀을 세우기 위해서 사직(社稷)과 함께 가장 먼저 건설해야만 했던 매
우 중요한 건축물이었다. 역대 왕과 왕비의 혼이 모셔져 있는 신전으로서 조
글 : 박일선 (단청산수화 작가)
선왕조를 상징하는 의미가 크다보니 건축가 고 김중업(金重業, 1922~1988)
은 생전에 고대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에 비유하여 '동양의 파르테논'이라
고 불렀다고 한다.
단청은 그 종류를 가칠단청, 긋기단청, 모로단청, 금단청으로 크게 4가지로 나 정문인 창엽문(蒼葉門)을 통과하면 삼도(三涂)라는 세 줄로 된 돌길이 북으로
1)
눌 수 있다. 좀 더 세분해서 모로단청 을 모로단청과 금모로단청으로, 금단청 길게 뻗어 있다. 제례 때 왕과 세자가 제사를 주관하기 위해 걸어가는 길로 가
2)
을 얼금단청 , 금단청, 갖은금단청 으로 나누어 7가지로 분류하기도 한다. 하 운데가 양 옆보다 약간 높게 되어 있다. 가운데의 약간 높은 길은 향로를 받들
3)
지만 금모로단청과 얼금단청의 경우 서로 비슷해서 명확하게 구분하기 애매 고 다니는 신로(神路)이고, 동측의 낮은 길은 왕이 다니는 어로(御路), 서측은
한데 몇 가지로 분류하느냐는 그다지 큰문제는 아니라고 생각된다. 세자가 다니는 세자로(世子路)이다. 삼도를 따라가면 신문(神門)에 다다르고
그 안으로 국보 제227호이며 태묘(太廟)라고도 불리는 장대한 규모의 정전(
먼저 가칠단청(假漆丹靑)을 언급하자면 무늬는 전혀 사용하지 않고 붉은색 계 正殿)이 보인다. 종묘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건물로서 가칠단청의 전형을 보
통의 석간주(石間硃)나 푸른색 계통의 뇌록(磊綠) 등으로 바탕칠만 하고 끝 여준다. 길이만 101m, 19칸의 동서로 길게 이어진 일자형 건물로서 보는 이
내는 가장 단순한 단청을 말한다. 화려한 장식적인 효과보다는 목재를 햇빛과 들을 압도할 만큼 위풍당당하며 우리나라 단일 목조건물로서는 가장 긴 건물
비바람, 병충해로부터 보호하여 목조 건축물의 수명을 연장시키려 하는 단청 이다. 홑처마에 맛배지붕을 하고 있으며 수십 개의 둥근 기둥들이 줄지어 늘
본래의 목적에 치중한 단청이다. 어서서 떠받치고 있다. 유난히 깊게 드리운 지붕 밑에 형성되는 어두운 그림자
와 함께 가칠단청의 석간주와 뇌록이 서로 어울려 만들어내는 적막하고 엄숙
상록하단(上綠下丹)의 단청 원칙이 가장 충실하여 적용되어 위쪽의 처마 부 한 분위기는 장엄하고 절제되며 신성한 공간임을 입증하고도 남을 지경이다.
분은 푸른색 계통의 뇌록을 칠하고 아래쪽의 기둥 부분은 붉은색 계통의 석간 또한 땅바닥에 닿을 듯이 길게 덮힌 기와지붕의 빛바랜 검정색을 보자면 절
주를 칠하여 최소한의 색상만을 칠하기 때문에 단청 중에서 가장 소박하고 담 제와 단순, 반복이 투영된 거대한 한 폭의 모노크롬(monochrome) 단색화가
백한 느낌을 준다. 유교를 정치의 근본으로 삼았던 조선시대에는 겸양과 절제 연상되기도 한다.
의 유교적 가치를 상징하는 건축물이 많이 세워졌다. 절약과 검소를 실천하기
위하여 단청 공사의 비용과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가칠단청이 널리 단청을 시공하는 절차에서 맨 처음 바탕에 칠하는 단계를 가칠이라 한다. 여
퍼지게 되면서 대표적인 유교단청으로 정착하게 된다. 그래서 궁궐이나 사찰 자의 화장에 비유하면 기초 화장을 하기 전에 파운데이션을 바른 상태라고 할
과 같이 권위를 나타내기 위해 쓰이는 화려한 단청과는 달리 종묘나 성균관, 수 있다. 파운데이션만 바른 상태를 화장을 안했다고 생각하듯이 많은 사람
향교, 사당 등 유교적인 건축물에 쓰이게 되었던 것이다. 들은 가칠단청을 단청을 안한 것으로 잘못 인식하지만 엄연히 단청의 한 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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