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1 - 전시가이드 2021년 03월 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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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본색, 100x257cm, 2021








                                                                  운 등반길에 오르는 셈이다. 몸으로 경험된 감각들, 그래서 노반의
                                                                  도시표현은 크게 두 가지 시점으로 분류된다. 보이는 풍경과 보이지
                                                                  않는 풍경, 거시적 시점을 보여주기 위해 높은 빌딩 숲을 파노라마
                                                                  와 같이 조망하는가 하면, 이동시점을 통해 도시의 개인들과 소통하
                                                                  고 풍경 구석구석을 엿보면서 그네들의 미시적 시점을 묘사하는 것
                                                                  이다. 지금-여기 서울도심의 이야기들을 느끼고 싶다면 우리는 노
                                                                  반이라는 이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한국의 호크니, 은둔하는 현대인들의 일기장
                                                                  노반의 그림은 한국의 새로운 팝아트를 보여준다. 통속적인 스타일
                                                                  을 극히 세련된 방식으로 차용하려는 시도는 스냅사진과 같은 우
                                                                  리의 일상에 유쾌한 미감을 더한다. 판화를 활용한 평면성과 동시
                                                                  에 지극히 아날로그적인 기법을 사용하기도 한다. 그래선지 휘트
                                                                  니미술관에서 그린 뉴욕의 일상이 떠오르는가 하면 데이빗 호크니
                                                                  (David Hockney, 1937~)의 펼친그림 같은 느낌이 샘솟는다. 노반그
                                                                  림을 본 일반인들의 평가가 그러하다. 그런데 아이러니하다. 색감에
                                                                  있어서 과감한데 비해 동양의 두루마리를 그림을 보는 느낌, 그래
                                                                  서 노반그림의 특징은 평면적이면서도 단순하고, 명료하면서도 다
                                                                  이나믹하다. 말 그대로 형식과 내용에 있어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셈
                                                                  이다. 작가에게 서울은 마음의 안식처이자 고향이다. 노반이 모던도
                                                                  시를 그리게 된 이유는 도시의 소멸과 성장 속에서 자기 자신을 발
                                                                  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21세기 도시에 대한 서사는 꿈틀거리는 유
                                                                  기적 도시의 네트워크를 탄생시킨다. 실제 작가의 그림은 은둔하는
                                                                  현대인들의 일기장과 같다. 도시인의 욕망을 들여다보는 재미는 과
                                          늦지 않았어, 53x45.5cm, 2021
                                                                  거 선인들이 문에 구멍하나를 내고 들여다보던 내밀한 속이야기와
                                                                  닮았다. 도시의 욕망을 모던풍속으로 재해석하는 과정들안에는 여
                                                                  러 사회이슈로부터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들까지 다채롭게 등장한
            문 사이로 보이는 오늘은 적어도 작품 속에서 만큼은 유토피아를 꿈꾼다. 이             다. 노계선 작가의 시각유희, 노반에게 그림이란 응시의 창이자 유
            안에서 도시의 건축물들은 다소 기형적으로 존재한다.                          쾌하고 즐거운 행위이다. 적어도 그림을 그리는 시간만큼은 여성이
            노반의 기억 속에서 서울의 삶은 기억되는 동시에 새롭게 움직이는 변화무쌍              라는 범주로부터 해방되어 체면도 놓아버릴 수 있는 즐거움에 사로
            한 긍정의 에너지로 묘사된다. 실제로 작가는 도시 곳곳을 체험하기 위해 도심            잡히는 것이다. 추함과 선함의 공존 속에서 도시의 욕망을 기록해온
            속 가장 높은 곳에 오르내리기를 자처한다. 겸재 정선이 서울풍경을 그리기 위            작가의 탁월함은 여기 오늘 우리가 머무는 자리가 무엇인지를 선명
            해 산의 여러 형세를 체험한 것처럼, 모던 서울의 일상을 기록하기 위해 새로            하게 인식시켜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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