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 - 이철순 개인전 10. 19 – 10. 25 도봉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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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
사
율천에 자라는 알밤이 여무는 소리
올해는 어떤 글귀를 쓰셨을까? 새해가 되면 매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렸던 선물. 예쁘게 접힌 한지를 펼치면 거기에
밝은 묵빛이 한 획 한 획 선배님의 마음을 빛내며 달려듭니다. 이십대 풋 청춘이 삼십대 넉넉한 청춘을 알고 지낸지
수많은 강산의 변화가 이어졌지만 아직도 함께할 사람의 첫머리에 철순이라는 이름은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웃음이 샘솟는다는 소천 서실에서 두 번째 삶의 무대를 꾸미는 율천의 나날은 정말 토실하게 여문 알밤의 튼실함과
빛나는 윤기로 가득합니다.
사도의 꿈을 펼치기 위해 들어섰던 서울교대에서 먹 가는 소리와 절로 넘치는 묵향에 가슴이 아리던 날, 한 획 한
획 이어나가던 노 스승의 모습은 먹물이 한지에 스르르 스미듯 그렇게 번져 올라 서예가 평생의 반려가 되었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하얀 캔버스에 현란한 채색을 하던 저와 다르게 아무도 더할 수 없는 묵빛으로, 그 향으로, 하루를
다독이는 생활을 이어왔습니다. 한 달과 한해를 거듭하여 필묵의 길은 더욱 단단해져갔습니다. 가르치는 기쁨이 있어
행복했습니다. 거기에 세상풍파에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마음은 흑백의 조화인 서예로 다져져 그 넉넉한 모습을
우리에게 보이셨다 생각합니다. 스스로 내실을 다지는 노력은 적게는 공무원미술협회의 활동으로, 나아가 지역에
뿌리를 내리는 노원서예협회의 활동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런 노력과 꾸준함이 더해지는 순간순간, 필력은 기운을 더해
대한민국서예대전에서 그 예를 인정받고 초대작가라는 우람한 밤나무로 그 그늘을 넓게 펼치게 되었습니다.
한국어 봉사활동이라는 새로운 무대에서도 이런 모습은 빛을 더했습니다. 코이카 봉사활동으로 파견되었던 네팔의
교직원과 학생들에게 서예의 기초를 알렸습니다. 현지인에게 서예 현판을 써주었고, 수백 점의 부채와 연하장에
묵향을 가득 담아 전달했습니다. 이어진 키르기즈스탄 봉사활동에서도 아름다운 한글과 함께 우리의 서향을 진하게
남기셨습니다. 현지인과 대사관, 선교활동을 하던 사람들에게 써주었던 ‘사랑’, ‘행복’ 그 글귀를 실천으로 남기셨습니다.
2008년 소천 서실을 연 이래 서예라는 분야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친숙한 삶의 문화가 되도록 애써오셨습니다. 한글과
한문의 다양한 서체를 두루 전하며 서예를 편한 마음으로 대하고 접하도록 웃으면서 맑은 샘물 소리로 다가서는 활동을
이어왔습니다.
서예와 함께한 40여년, 이제 고희를 앞에 두고 당신은 더 빛나는 꿈을 봅니다. 저절로 내고 마시는 숨처럼 서예가 우리의
숨 한 모금이 되기를 말입니다. 그 묵향과 빛이면 누구나 건강한 숨결을 내쉬게 된다고 전시장을 휘감은 향내는 그렇게
환한 빛을 내뿜고 있습니다.
마당산악회 코스 대장 김 학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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