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7 - 전시가이드 2020년 11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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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도무애 묵향만당 경천애인 다향만당
남도 추사의 맥 라라는 인정을 받았으며 완원 옹방강은 자신의 아호인 완원의 완자를 따서 완
당이란 아호를 내려주었다. 그 후 추사 김정희는 병조참판이란 직위에 까지
오르면서 주의의 시기와 아류에 휩싸여 제주도로 유배를 가게 되면서부터 그
자신만의 서법을 더욱 완숙의 경지로 올릴 수 있었으며 그의 독창적 서법인
글 : 허필호 작가노트 추사체를 완성시킬 수 있었다고 사료된다. 추사체의 전수를 그에게 영향을 받
은 제자들에 따라 몇 가지로 그 맥을 분류해 볼 수 있다.
한국 서법의 기본은 문화의 흐름과 같이 자연스레 중국에서부터 전래되어 오
면서 오랜 세월 동안 우리 자체의 독창적인 서체를 완성한 분을 찾을 수 없다. 첫 번째로 추사 김정희의 대표적인 제자로 제주도 유배지까지 수차례나 오
선조 때 석봉 한호와 정조대왕, 김생 등 역사에 남아있는 몇몇 명필들은 있었 고 간 소치. 허유에 의해 그의 아들 미산 허형과 남농 허건으로 이어져오고 전
지만 독자적인 자신의 서체를 한국의 서체라고 할 인물은 조선 후기 금석학의 남 진도 운림산방으로 맥이 되어 흐르고 있다. 하지만 소치. 허유의 맥은 서보
대가 추사 김정희 선생 한 분뿐이라 할 수 있다. 다 화에 치중되어서 소치에서 미산으로 이어지면서 서의 영향은 사라지게 되
추사는 어려서부터 실학자 박제가를 스승으로 실학 공부를 하였으며 부친인 었고 화에 많은 영향을 받아 남도 미술의 중요한 한맥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김노경을 따라 북경(연경)을 다녀오면서 청조의 문화를 접하게 되었고 그의 두 번째는 그의 제자이자 당대의 권력가인 석파 흥선대원군으로 이어져 오는
영특함에 청조의 대학자인 완원 옹방강과 거유 석학 등으로부터 해동제일 이 맥을 찾을 수 있다. 석파는 추사의 제자로서 석파 난(蘭)의 대가로 자리 잡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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