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1 - 전시가이드 2020년 11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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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보는 전시

























                                                                       Unknown time-time layer 202, 63x87cm, Acrylic on wood, 2020








                                                            단일한 하나로 봉합될 수 없는 상이한 시간에 걸려있던 것들이라 작가는 여
                                                            러 이미지를 불러 모으는가 하면 이질적인 방법론을 구사하고 있다. 사실적
                                                            인 묘사와 단순하게 처리한 부위, 재현적 형상과 기하학적인 패턴, 서양화기
                                                            법과 선묘중심의 동양화 방법론, 그림과 오브제(네온), 가상과 실제의 빛 등이
                                                            공존한다. 그것은 비균질적이고 불연속적인 시간의 힘에 따른 것이자 자신이
                                                            다루는 시간이란 주제를 효과적으로 가시화하려는 여러 시도에서 출현한다.
                                                             나로서는 커다란 꽃 잎 하나가 화면의 중심부를 가로질러 누워있거나 수직으
                  Unknown time-time layer 204, 121x75cm, Acrylic & neon on wood, 2020
                                                            로 상승하는 그림이 좋다. 덧없이 떨어진, 몸체에서 순간 분리되어 허공 속으
                                                            로 사라지기 직전의 꽃잎은 시간에 종속된 존재의 은유 및 시간의 흐름을 보
                                                            여준다. 그 꽃은 절정의 순간을 황홀하게 안기고 있지만 이내 소멸과 부재의
            수 없는 한 번뿐인 인생을 그때그때 특수한 상황, 특정한 시간 속에서 살아간      시간으로 떨어지는 중이다. 부드럽고 흐릿한 색채와 하염없이 그 존재를 애무
            다. 인간 일반의 경험으로 결코 환원할 수 없는 것이 한 개인의 삶, 그의 시간    하는 듯한 붓질의 탄성에 의한 질감 처리가 주목된다. 그것은 마치 은밀하게
            이다. 이처럼 인간의 실존은 시간과 연동되어 있다. 하이데거의 말처럼 “돌은      꽃잎의 살, 그 질감을 편애하는 부드러운 시선이고 그것을 촉각적으로 더듬은
            거기에 있다. 새는 살아있다. 인간만이 실존한다.” 이 시간에 대한 인식이 인간    눈이다. 또한 시간의 경과를 경험하게 하고 잔인한 시간의 행적을 목도시킨다.
            을 인간으로서 자존하게 하는 편이다. 역사와 문화, 예술은 바로 이러한 시간      그리고 그 시간이 주는 상처를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한 존재의 찰나적인 느낌
            에 대한 인식을 토대로 구성된 것이기도 하다.                       도 슬쩍 고여 있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이미 이 커다란 꽃잎 하나만으로도 그
                                                            림은 어느 정도 충분해 보인다. 주변에 배치된 오브제와 같은 이미지들의 감
            조현애의 그림은 ‘시간’에 관한 것이다. 작가는 이 항구적이고 보편적인 주제      각적 구성이 그와 함께 하고 있다. 그림은 특정 주제를 너무 뻔하게 지시하는
            를 오랫동안 다루었다. 시간에 대한 일반적인 관념을 도해한 것이기도 하고        것이 아니라, 화살표나 특정 방향을 겨냥하는 손가락과도 같은 게 아니라 한
            개별적인 시간의 인식을 시각화하려는 시도이기도 할 것이다. 미술사에서 시        개인이 벼락처럼 경험한 시간에 대한 느낌, 그 농밀한 감각을 사건화 하는 일
            간이란 너무 익숙한 주제다. 문제는 시간에 대한 익숙한 개념과 이의 상징적       이어야 한다. 소재나 표현의 방법론 자체가 스스로 발화되어야 하는 것이 그
            인 이미지화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개인적인 차원에서 경험된 시간에        림이다. 주제가 대신하는 게 아니라 표면 자체가 그대로 밀고 나와 보는 이의
            대한 발언이고 그것의 형상화일 것이다. 화면에는 과거와 현재의 이미지가 공       망막에, 몸에 달라붙어야 한다.
            존(조선시대 산수화, 풍속화 혹은 서양의 명화 등)하고 여러 층위의 공간들이
            겹쳐져있다. 이는 다층적인 시간의 두께를 암시한다. 그 위로 시계태엽이나 시      작가의 근작은 막막한 공간에 기념비적으로 출현하는 꽃잎과 그 어딘가에 시
            계바늘, 커다란 꽃잎 하나가 부유한다. 시간을 상징하는 일련의 기호와도 같은      간의 흐름이나 두께, 그리고 그것들이 껴안고 있는 여러 조각난 기억들에 대
            이미지들이다. 주변으로 비행기나 고래, 자전거 탄 여자가 별처럼 떠 있거나       한 흔적들을 보여주고 있다. 최근 그림은 좀 더 간결하게, 회화적으로 보다 풍
            서로 멀찍이 떨어져 자갈처럼 박혀있다. 과거의 이미지와 현재를 암시하는 도       성하고 깊게 조율되어 나오는 선에서 고려되거나 그 지점으로 기우는 듯하다.
            상들이 한 공간에서 ‘초현실적’으로 조우한다. 여러 이미지들의 병치, 콜라주      오랜 작업 시간의 누적만큼이나 다채로운 방법론과 여러 시도를 선보인 작가
            는 격렬하게 흐르는 시간에 의해 사라진 흔적들, 부재하지만 없다고 말할 수       는 근작을 통해 설명적인 시간의 서술이나 익숙한 도상에 의한 연출에서 빠져
            없는 것들의 재림, 볼 수 없는 것들의 귀환이고 몸 없는 것들이 지르는 환청을     나와 자신만의 감각으로 포착한 시간에 대한 이미지를 ‘회화적’으로 풀어내려
            시각화한다. 사라진 시간과 현재의 시간이 공존하면서 그 둘의 엇갈림과 겹쳐       한다. 자신만의 의미로 이룬 시간의 개념을, 시간에 대한 유의미한 체험을 그
            짐이 화면에서 미끄러진다.                                  림의 표면에 실어 밀고 나가려는 시도가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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