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0 - 전시가이드 2024년 9월 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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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연 컬럼


         김민호 작가

        다시점과 시간의 누적으로 관조하는 세계



        글 : 이주연 (경인교육대학교 교수)







                                                        도감, 즉흥성과 더불어, 켜켜이 쌓인 레이어에서는 깊이감까지 느낄 수 있다.
                                                        이와 달리 사진은 일반적으로 실제적 경험이나 그 경험의 의미를 담고자 다양
                                                        한 시점과 관점으로 찍는 매체라고 할 수 있는데, 대부분은 찰라의 미학으로서
                                                        결정적 순간에 집중하여 대상을 포착하는 것이 가장 큰 매력으로 꼽힌다. 그러
                                                        나 김민호 작가의 사진은 일반적인 사진의 특성이라고 할 수 있는 ‘순간 포착’,
                                                        ‘재현’, ‘프레임’의 영역을 벗어난다. 작가가 밝힌 바대로 작가의 사진은 ‘대상
                                                        을 관찰하는 공간의 횡적 이미지’의 축적에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대
                                                        상의 종적 이미지’가 겹쳐 쌓여 하나의 이미지로 환원되는 과정에서 발생한 다
                                                        양한 흔적들이다. 그렇다면 시간의 누적으로 인한 흔적이라는 측면에서 한쪽
                                                        끝단에는 장노출을 통해 존재하는 모든 것은 사라짐으로써 실존의 의미를 역
                                                        설적으로 드러내는 김아타(한국/1956~) 작가의 사진이 존재한다면, 또 다른
                                                        한쪽 끝단에는 ‘시간의 연속성에서 관찰되는 대상의 종적 이미지와 공간의 이
                                                        동을 통해 관찰하는 대상의 횡적 이미지’(최연하, 2015)가 누적되어 완성되는,
                                                        ‘시간의 종적 궤적과 이동으로부터 획득한 움직임의 횡적 흔적이 교차하며 만
                                                        들어낸’(김성우, 2021) 김민호 작가의 사진이 존재한다. 양쪽 모두 시간이라는
                                                        공통적 요소가 중심을 이루지만 한쪽에서는 움직이고 살아 있는 생물을 없애
                                                        버리는 시간이 되었고 다른 한쪽에서는 대상의 해체로 더 이상 동일하지 않은
                                                        이면을 마주하는 시간이 되었다. 김민호 작가의 작업에서는 결과로서의 흔적
                                                        이 아닌 과정으로서의 흔적이 결과로서 중요하게 고려된다.

                                                        눈이 가는 대로 유람하듯 이동하는 시점에 기반하여 원거리에서 롱샷으로 담
                                                        은 세상은 동양화를 전공한 작가에게 있어서 아주 익숙한 방법일 것이다. 따
                                                        라서 감상자로서 공간의 횡적 이미지는 작가의 사진 작업에서 보다 잘 인지
                                                        되는데, 이에 비해 대상의 종적 이미지는 흔들리는 이미지들에 의해 추상적
                                                        으로 인지되고 해석된다. 작가의 작품 중 여러 개의 형태로 구성된 작품을 살
        세월1_194×130㎝_캔버스에 목탄_2015                       펴보면, ‘Flow the city 북한산’(한지에 피그먼트프린트, 2024)은 8개의 세로
                                                        형태로, ‘CCTV Seoul 360 point of view’(한지에 목탄, 인디아 잉크, 혼합매체,
                                                        2012)는 360개의 독립된 풍경이 담겨 있다. 시간의 종적 이미지를 보다 시각
        김민호 작가의 사진 작업을 보면서 작가의 목탄 드로잉이 있다면 이와 비슷한       적인 효과로 보여 주기 위해서는 한 화면에 이를 집적시켜 하나의 이미지로
        느낌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작가의 목탄 작업(‘세월’, ‘인   환원하여 해결하기보다는, 약간 다르기는 해도 50개의 개별 구조로 전시된 작
        왕(rain)’, ‘노들섬’, ‘파도’ 연작)은 그의 사진 작업과 여러모로 닮아 있었다. 매  가의 ‘결’ 시리즈에서 선보인 바처럼, 감상자가 이 사이를 걸어 다니면서 이동
        체를 넘나들며 작업하는 동시대 작가들의 경우 매체의 물성에 기초하여 작업        에 따른 관점과 시간의 차이를 발견할 수 있도록 작가의 시선을 따라 이미지
        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는 매체간 작가의 특징을 볼 수 있는 유사성이 잘 드       들을 배열하는 것도 목적을 달성하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이는 시선의
        러나지 않는데, 김민호 작가의 경우 사진과 목탄 작품간 작업 과정에서 시각       이동과 공간의 확장을 통해 시선의 확장과 공간의 이동을 이루어낸 임택(한
        적 궤적인 ‘흔적’을 남긴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국/1972-) 작가의 방법이기도 하다.

        손으로 긋고 문지르면서 표현하는 목탄은 쉽게 지울 수 있지만 작업 과정에서       작가도 최근의 작업에서 평면의 표면과 그 표면의 변화와 움직임에 관심을 두
        의 흔적은 바탕재에 고스란히 남는다. 아드리안 게니(Adrian Ghenie/루마니  고 작업하고 있다고 하였다. 다시점과 시간의 누적으로 관조하는 작가의 객관
        아/1977~)는 “흔적이 남기는 하지만 이는 정확성보다 실수에 기반한 테크닉     화된 세계는 다양한 매체를 통해 그리고 다양한 형태의 작업과 전시 방법을
        이다. 원하는 선이 나올 때까지 실수를 계속하다 보니 그리는 과정에서 자유       통해 세상을 향해 더욱 날카롭게 드러날 것이다. 공간에 대한 깊은 이해와 시
        를 찾게 되었다”라면서 목탄이 주는 매력을 언급한 바 있다. 대상에 대한 묘사     간성에 대한 작가의 고민을 통해 우리는 진정으로 보고 인지하고 이해하고 있
        가 지속적으로 행해지며 층으로 포개지는 목탄 드로잉의 선에서는 확실히 시        다고 믿는 대상이 실제로 우리가 보고 인지하고 이해하고 실재하는 대상인가
        간성을 읽을 수 있는데, 이러한 선 위로 가장 확실하게 그어진 최종적인 선은      를 다시금 돌아보게 만든다.
        그리는 행위의 마지막 순간을 가리킨다. 목탄 드로잉의 선에서는 운동감,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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