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4 - 전시가이드2025년 09월 이북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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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보는 전시
고요한 행진, 73x91cm, 장지 석채 분채 황토, 2023
2025. 9. 10 – 9. 16 인사프라자 갤러리 (T.02-736-6347, 인사동)
한국 전통 흥과 멋 는 건축적 구조를 부드럽게 완화시키며, 보는 이에게 따뜻하고 아늑한 온기
를 전한다.
김혜린 개인전 작품 속 모든 요소는 저마다의 자리에서 조화를 이루며 호흡한다. 열린 궁궐
의 문은 관람자를 작품 안으로 초대하고, 단단한 기초석과 십장생의 상징물들
글 : 김혜린 작가노트 은 그 공간을 지탱한다. 나에게 이 풍경은 인간이 본능적으로 그리워하는 안
식, 평화, 안전의 형상이다. “궁궐의 문을 통과할 때 느껴지는 자유로움과 그
안에서 비로소 얻을 수 있는 내적 평화를 표현하고 싶었다”
작가 김혜린은 한국인의 정서 깊숙한 곳에서 발현되는 ‘흥’과 ‘멋’에서 출발한
다. 그는 한복의 부드러운 선이 춤사위처럼 퍼져 나가는 장면을 떠올리며, 화 색채는 작가의 또 다른 언어다. 흰색은 빛의 확장과 보호를, 남색은 고요와 지
면 속에 즐거움과 기쁨, 자유와 연합을 담아낸다. 그 속에서 자연스레 드러나 혜를, 초록은 생명과 꿈을, 빨강은 열정과 에너지를, 금색은 부와 귀함을 상징
는 것은 한국 문화가 오랜 세월 간직해온 얼과 기개, 품격과 풍류다. 한다. 이 색들은 서로 충돌하거나 어우러지며 다양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특히 기초석에는 성경 『요한계시록』 속 보석 이미지를 차용하여, 영원한 생명
그의 작업에는 언제나 두 개의 세계가 공존한다. 눈에 보이는 현실과 보이 과 빛, 그리고 진정한 왕의 문을 향한 갈망을 담아냈다.
지 않는 상상의 세계, 오늘과 어제, 기억과 이상향이 한 자리에 스며드는 것
이다. 이를 위해 작가는 수묵과 진채를 바탕으로 자연 분채와 석채를 겹겹이 “나의 그림이 단순히 시각적 오브제로 머무르지 않기를 바란다. 제 작업이 누
쌓으며, 시간의 깊이와 숨결을 화면에 담는다. 궁궐의 문과 색색의 기둥은 과 군가의 마음에 평화와 기쁨을 퍼뜨리고, 그 안에서 참된 자유를 찾도록 안내
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다리로서 등장하며, 그 위에 얹힌 색과 형태들은 작가 하는 빛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가 지향하는 평화롭고 안전한 세계의 모형도가 된다. 한지의 결은 무게감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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