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0 - 전시가이드2020년 10월호 이북
P. 90
미리보는 전시
장미향 41×32cm oil on canvas 2008 기억속에서 53×73cm watercolor 1991
2020. 10. 21 – 10. 26 부산교육대학교 한새갤러리 (T.010-2858-2516, 부산)
꽃, 바람꽃, 나리, 들국화, 여뀌, 방가지똥, 엉겅퀴, 맥문동, 강아지풀 등등 이
생성하는 장소로서 그리기 름 모를 들꽃들이 마음 가는 대로 놓여 있다. 그들이 피고 지는 시간대 역시
이상순 회고전 이 화면 안에서는 어떤 절기나 사실적 현장과는 무관하게 얽힌다. 산과 산, 집
과 소나무, 꽃과 꽃 사이의 빈 곳에서 그들은 다툼 없이 어우러지고 기억과 현
재가 겹쳐진다. 더 목격되는 소재도 방법도 없고 더 요구하는 것도 없다. 지
금 도달한 곳이다.
글 : 강선학(미술평론)
소재를 배열 혹은 배치하는 공간 구성과 소재들이 서로 관계하는 정합성의 문
이상순의 화면에는 그 흔한 원근법도 단축법도 보이지 않는다. 집은 비딱하 제, 시간성의 특징들이 무관한 장소에서 서로 만난다. 색상 역시 구축적이기
게 앉았고 나뭇잎이 무성해야 할 곳에 느닷없이 달팽이가 기고 들꽃들이 자 보다 일회적이고, 엷게 스며들어 평면감이 두드러지고 질감보다 행위성이 강
릴 잡고 있다. 산은 육중하기보다 물에 떠밀려가는 종잇조각 같고, 구름 같다. 하게 드러난다. 이런 특징은 10여 년을 두고 점차적인 변화로 혹은 급격한 결
휘어진 길을 따라 가로수가 펼쳐지지만, 원근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나무와 단으로 일어난 조형의식으로 보인다. 이미지를 통한 인식은 표상에만 국한된
풀은 구별이 되지 않는다. 집과 화려한 깃털의 공작새, 나비와 고라니가 여기 것이 아니라 중심이 성립되지 않는 이시성과 이소성으로 가득한 구도 안에서
저기 등장하고, 자기 집을 이고 있는 달팽이는 새를 무서워하지 않고, 패랭이 섬광처럼 떠오르는 이미지의 관계에서 지금까지 은폐되어 있던 것을 새롭게
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