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5 - 2019년04월전시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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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ore 91×65cm Oil on canvas                    Amore 91×65cm Oil on canvas











            계에서 시작된다. 다만 전자가 앎에 기초한 것이라면, 후자는 모름에 기댄다는      김형숙 작가의 거울도 이와 유사하다. 작가의 거울에는 들장미 소녀 캔디와 빨
            점이 다를 뿐이다. 언제나 우리의 인식은 이 경계를 탐했다.               강머리 앤이라는 일본 만화의 주인공이 반영되고 있다. 이는 만화의 캐릭터를
                                                                                                 3)
                                                            차용했다는 점에서 무라카미 다카시나 요시모토 나라의 네오 팝 으로 해석할
            김형숙 작가의 작품에서 이러한 경계는 불명확해진다. 작가의 특정 시기에 등       여지를 주기도 하지만, 지향점과 도달점이 그와는 다르다.
            장하는 작품의 공통점은 쿠션으로 표현된 이미지 위에 텍스쳐(texture)를 입
            힌다는 것이다. 완성된 이미지에 텍스쳐를 입히는 것은, 텍스쳐를 이미지로 그      슈퍼플랫(Superflat), 즉 초평명(超平面)적 네오 팝은 예술의 위계적 가치 구
            리는 것과는 의미와 목적이 다르다. 기획단계부터 하나의 이미지로 관여한 후       분을 평등화시킨다는 점에서 일정 부분 폭력적일 수밖에 없다는 모순을 안고
            자의 방식은 전통적인 표현주의적 기법에서 사용하는 것이며, 이는 일탈도 일       있다. 모든 것의 평면화는 산을 깎아 평지를 만드는 것처럼 자연성을 위배하
            상의 변용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김형숙 작가의 작품에 등장하는 텍스       는 것이고, 각자의 위치와 변화와 차이를 인공적으로 없애는 것이다. 그런 의
            쳐는 이미지의 완성 이후 그려진다. 이는 지우기(erase)와 그리기(painting)   미에서 무라카미 다카시의 슈퍼플랫은 전위적이고 전복적으로 보이지만 사
            만큼이나 큰 차이다. 없는 것은 지울 수 없다. 최초의 단계는 언제나 그리기뿐     실 파시즘과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수도 있다. 그것은 가까이할 수 없는 것을 강
            이다. 미술사는 수천 년 동안 그것의 역사였고, 지우기가 시작되는 것은 형(形,    제로 가까이 놓는 작업이며, 화해 불가능한 사이를 화해하게 만드는 작업이다.
            form)의 구축에 힘써 왔던, 하지만 거기에 한계를 체감할 수밖에 없던 자들이    이것은 낭만으로, 평등으로 위장한 폭력이다.
            그 끝에 이르러 선택한 것이다.
                                                            김형숙 작가의 거울 속 이미지들은 네오팝의 초평면을 추구하는 존재가 아니
            김형숙 작가의 텍스쳐는 구축한 형을 지워 경계를 흐리기 위한 작업이다. 그럼      다.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 캔디는 독립적이고, 예쁘지는 않아도 앤 셜리
            으로써 나누고, 가르고, 경계하고, 차별하였던 구축의 세계를 넘는 작업이다.      는 사랑스러운 존재인 것처럼, 누군가와 같아야 하는 군집체(群集體)가 아니
            이쪽과 저쪽의 벽, 현실과 비현실의 벽, 너와 나의 벽을 의식적으로 지우는 것     라 단독자(單獨者)로서의 존재자이다. 그들은 닮음으로 포섭되지 않고, 타자
            이 그의 작품이다. 그럼에도 형을 다소간 남겨둔 것은 그가 말하고자 하는바,      를 받아들이면서도 홀로 설 수 있을 만큼 독립적이고 용기 있는 존재다. 이는
            정의함과 정의하지 않음 어느 한쪽으로만 치우치지 않겠다는 중용의 의지이         곧 작가 자신이며, 새로운 세대의 윤리학이다.
            다. 작가의 작품에서 형은 존재하면서 부재한다.
                                                            모든 작가는 작품으로 자신을 말할 수밖에 없다. 인간의 모든 행위가 인간적
            두  번째는  거울과  반영이다.  가라타니  고진(からたにこうじん,  柄谷行人,   인, 너무나 인간적인 행위인 것처럼, 작가의 모든 행위도 작가다운, 너무나 작
            1941~)에 따르자면, 반성은 언제나 거울에 자기를 비춘다는 메타포로 표현된     가다운 행위다. 부정할 수 없는 일이고, 그렇다고 긍정할 필요도 없는, 자기 자
            다. 하지만 거울에 의한 반성에서는 아무리 '타인의 시점'에 서고자 해도 공범     신이다. 김형숙 작가의 작품 속 쿠션도, 그 안의 여성도, 그리고 그 밖의 텍스쳐
            성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말도 덧붙인다. 반영과 관계된 거울 속 이미지는       들도 모두 작가의 어떤 부분이 붓끝에서 맺힌 이미지일 것이다.
                                          1)
            언제나 주관적 상을 출력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체가 거울에       그 탈경계 시대의 회화 윤리가 다음 작품에는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변용될
            비친 이미지를 받아들일 때 주체에게는 변형이 일어난다. 거울에 자신의 모        지 기대된다.
            습을 비출 땐 어떻게든 그 이미지에 개입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거울에 출
            력되는 이미지는 주체 자신이 왜곡한 상이며, 동시에 '이마고'라는 고대의 용
            어가 사용되는 것이 잘 보여주듯이 예정력prédestination을 발휘하여 주체를   1)<트랜스크리틱>, 가라타니 고진, 도서출판b, 2013
            이끌어 가는 역할을 한다. 우리는 자신을 거울에 비친 방식으로 인식함으로        2) <나 기능 형성자로서의 거울 단계>, 자크 라캉, 새물결출판사, 2019
                           2)
            써 그대로 행동을 하기 때문이다.                              3) 노이 사라와기(椹木野衣), 쿠스미 키요시(楠見 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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