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9 - 2019년04월전시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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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공간 40×91cm Oil on Canvas 2019
람이 깃을 접는 특별한 장소 즉 ‘집-둥지’의 이야기다. 비구상이 허용한 무질서 이란 명칭을 붙여 놓았다. 인간에게 집이란 안식처이고 인생의 여정을 함께하
와 혼돈 속에 한 푼의 오차 없이 건축된 집들의 ‘풀 스토리’다. 그리고 그곳에 는 곳으로 묵은 때처럼 곳곳에 희로애락이 서려 있다. 우리는 누구든지 살아
는 당연하게도, 우리의 인간사가 축약돼 있다. 빨간색은 일반적으로 정열, 권 가는 모습이 모두 다르며 그 경험은 무한하며 변화무쌍하다. 집이라는 공간은
위, 사랑, 긍정을 나타내며 아름다움, 멋진 장소, 강인한 생명력 등 여러 추상적 탄생부터 사망에 이르기까지 각자의 추억이 새겨져 있고 사람들은 마음 깊은
개념을 떠올리게 한다. 이러한 빨강과 주황색을 배경으로 화면 하단에 완만한 곳에 그것들을 간직하며 살아간다. 그러므로 집이란 어쩌면 그러한 모든 기억
능선을 가진 커다란 형상이 웅크리고 있다. 다양한 색면들의 군집으로 색의 향 의 집합체를 담고 있는 장소이며, 내면의 철학이 깃든 표현의 원초적 대상이
연처럼 강열하면서도 차분하게 드러내고 있다. 파란색은 경계 없이 가없는 하 라 할 수 있다. 작가는 집안에 첩첩히 보관된 다채로운 인생의 삶을 기억의 공
늘, 초월적인 무엇, 이상의 세계 등을 상징한다. 장현경의 파란색은 가시적 창 간을 통해 비구상 화면으로 집약시켰다.
공을 직유하고 그 너머 보이지 않는 이상적인 세계를 은유한다. 가볍게 덧칠
한 기법으로 색조를 ‘톤 다운’ 혹은 ‘톤 업’시킨 청색 공간의 상단은 하늘로 삼 작가는 심상에 들어온 자신의 기억에서 수많은 풍경을 담아내며 집의 형상을
고 하단은 지상의 세계와 병렬시켜 놓았다. 그러자 청색의 환타지가 펼쳐지면 색으로 연주한다. 가운데 유독 높이 치솟아 있는 하나의 선을 통해 본인의 뾰
서 작가의 색채 감각이 더욱 깊어졌다. 노란색은 성화에서 성인의 후광으로 사 족한 생각을 치유의 본능처럼 드러내기도 하고 가슴으로 흘러들어온 한마디
용되고 동양에서는 음양오행의 중심을 의미한다. 장현경이 사용한 노란색은 의 날카로움에 반응해 각인되어 표현된다. 심상에서 그리고 허상에서 그녀만
환한 빛을 발한 듯 밝은 색을 띠고 있다. 우주안의 생명체들을 집약시켜 공중 의 색의 공간이 동시성을 갖고 변하며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맑은 마음의 순
에 띄워놓고 하단에는 인간이 살아가면서 함께 어우러진 공간을 모아놓았다. 수성을 자신이 색으로 버무리는 조합의 공간을 연출하고 있다. 인간의 수직
흰색이나 회색의 무채색 배경은 생각의 색깔이 그러하듯 무게가 실려 있다. 적인 도전 의지를 상징화한 도시의 거만함과 끝없는 헛된 욕망으로 조물주에
화면 중앙에 거칠고 생동감 있는 터치 하나하나가 모아져 비정형의 형상을 이 도전하는 인간의 교만심이 담겨 있는 긴장의 색채이다. 그렇다면 의도는 분명
룬다. 그 위로 자유롭게 그어진 하얀 선의 필력에 의해 뇌파의 파동 같은 리 하지 않는가? 오늘날 우리는 물질만능주의에 빠져 있으며 인간성은 어디론가
듬감이 가미되고 있다. 무채색은 비움, 공(空)을 의미하고 유채색은 채움(有) 사라져 버렸고 수많은 군상들이 고독과 외로움에 허덕이고 있지 않는가?. 그
으로 간주되어 우주 안의 생명체들이 상생하면서 순환한다는 자연의 섭리를 래서인가 장현경 그림은 기억의 공간을 미화하려는 시도를 굳이 숨기지 않는
일깨우는 듯하다. 다. 빈손으로 와서 빈손으로 돌아가는 인간은 무엇하나 남기지 못하지만, 추
억의 상자만큼은 보관하고 있다. 존재했음의 복기를 돕는 그것은 그럼으로써
장현경이 추구한 색은 장식적인 효과를 불러오는 동시에 환상, 기억, 내적인 생의 마지막까지 위안을 주는 동반자가 된다. 만약 추억이 아름답게 기억되지
심리, 감각, 감정의 표명으로 간주된다. 그녀의 색은 자연과 인간의 감정, 감각 않는다면 인간은 고통을 다스리기 힘들 것이다.
의 체험을 근거로 하되 더 나아가 그것들에 부여된 의미조차 탈각하면서 절대
자유 그 자체로 부활한다. 장현경의 화면 구성은 구김 하나 없이 분할되어 시 장현경은 이번 전시에서 색채 탐색의 깊이와 고민, 도시의 바람으로의 색채
원스런 공간을 연출한다. 원색으로 채색된 배경은 하늘을 상징하거나 우주 속 가 갖은 수많은 상징성, 그에 따른 성과를 보여주었다. 대상을 놓고 사실적 재
의 공간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듯하다. 이러한 화면 분할은 눈높이를 공간 높이 현의 색으로부터 시작하여 점차 암시적이고 상징적인 표현의 색으로 변화시
이동시켜 지상의 것들을 내려다보는 듯한 장쾌한 느낌을 준다. 관람자의 시선 켰다. 작가가 탐닉한 색채는 내면의 우물을 퍼 올려 추상과 정신의 그릇을 가
에 따라 다양한 시각에서 감상하게 하는 작은 재미가 더해진다. 득 채우고 있다. 향후 장현경 회화가 계속해 길어 올릴 요소들이 무엇일까 기
대해 본다.
이번 전시의 작품들이 주제는 ‘집’으로 일관돼 있으며 제목도 <기억의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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