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0 - 전시가이드 2022년 09월 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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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정의 전시포커스


        류재춘의 바위꽃, 유수(流水)와의 대화



        글 : 안현정 (미술평론가, 예술철학박사)






























        류재춘, 바위꽃 시리즈, 2022 (1)




        하반기 코엑스 미디어 월(Media Wall)을 장식한 바위꽃의 향연은 빛과 색이
        최첨단 기술과 류재춘 작가의 자유로운 개념수묵을 통해 완성된 '수묵-디지로       개념수묵을 통한 세련된 한국화를 추구하다.
        그' 작업이다. 한지에 먹으로 그린 수묵화가 LED 기술과 만난 전통과 ICT기술
        이 융합된 독특한 영역을 선보이는 것이다. 세간의 큰 관심을 끌었던 ‘月下-풍     수묵화가 류재춘은 한 세대(30년 이상)를 오로지 수묵에 몸담아온 한국화(漢
        요의 달’ 시리즈 이후 작가는 새로이 바위꽃 시리즈를 선보인다. 하지만 이 작     國畵)의 어머니 같은 작가로 형사(形寫)를 뛰어넘는 ‘마음의 기세’를 통해 동
        업들은 동시다발적으로 작가에게 구현된 다양한 세계관의 하나이다. 어느 것        시대 ‘주제의식’을 수묵의 오랜 대상 속에서 현대적으로 재구성하는 ‘디지로
        의 선후(先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작가가 개척하고 있는 한국화의 글로벌      그의 원형탐구’를 해온 작가이다. 보이는 그대로 그리는 것은 대상의 참모습
        화의 일환에서 자연대상을 미학화한 독창성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작가는 인        이 아니기에 작가의 철학에 의해 ‘흉중성물(胸中成物)’한 후, 완성한 대상을 필
        간을 우주와 같은 스펙트럼을 지닌 존재라고 보고 물질에 담긴 내면의 가능성       터링하여 ‘개념수묵’의 새로운 장르를 개척 한 것이다. 전통 관념산수가 지극
        을 현실세계 속에서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를 고민해 왔다. 균형과 화해 속       히 전통적 사유방식의 결과라면, 개념수묵을 좇는 류재춘 작가는 형상 너머
        에서 수묵화가 가진 존재의 본질, 즉 구상과 추상의 접점 속에서 장르를 뛰어      의 세계를 동시대적 코드로 재해석하는 ‘철학하는 화가’인 것이다. 작가는 “한
        넘는 '이성과 감성의 교류'를 작품 안에 드러낸 것이다.                 국화는 예술혼과 창의적 회화 정신을 계승하고 발전시키며 전통적이고 아름
                                                        다운 우리 문화 뿌리를 표방하기 위해, 한국적 예술성과 특유의 심미적 조형
        작가는 바위 꽃시리즈와의 만남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혔다. “깊은 돌들의 시      성을 표현한다.” 말한다. 대담함과 섬세함을 지닌 작가의 강점은 미시/거시의
        간과 만나기 위해, 거제-제주 할 것 없이 한국의 아름드리 장소를 찾습니다.      모든 영역을 종합하여 ‘전통의 세련된 계승’에 힘쓴다. 이전 풍요의 달 시리즈
        돌들에게 질문하면 파도가 몰려들어 춤을 춥니다. 비를 맞으며 돌 위에 누워       에서와 마찬가지로 바위꽃(wave-Sea) 시리즈에서도 정지되어 있지 않는 세
        하늘의 소리를, 검은 돌들이 들려주는 바람의 소리를 듣습니다. 스케치여행을       상의 동세를 빛과 색과 기술, 이른바 ‘자연의 시간’으로 통합하는 개념화를 시
        하면서 밤을 새고 비를 맞으면 어느 사이 바위꽃이 완성됩니다.”             도하는 것이다.

        바위꽃을 그릴 때 작가는 물이 되고, 바위가 되고, 이를 결합한 개념화된 꽃이     흐르는 물에 핀 아름다운 ‘개념-꽃花’
        된다. 여기서 붓은 세상을 필터링하는 도구일 뿐이다. 전통에 머물지 않고 독
        특하고 기발한 미학적 자세로 한국화의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는 작가는 경험        류재춘은 한국화 안에 인간 그 자체의 본질을 담는다. 그리는 대상을 이해함
        이 시각화되는 과정까지 작품에 포함한다. 바위꽃은 밤바다와 돌 사이의 대화       에 앞서 자연과 자신을 일체화 시키고, 그 안에 동시대의 언어를 수묵으로 재
        속에서 탄생한 시각화된 시(詩)인 셈이다. 자연의 기세(氣勢)를 자신의 명분으     구성한다는 뜻이다. ‘먹꽃’(墨花)이 물의 흐름과 만났을 때, 우리는 마음의 풍
        로 승화시킨 긴 세월, 이제 많은 이들은 류재춘이 한국화를 선도할 작가라는       경(意景)을 실경(實景)으로 전환한 화가의 탁월함과 만나게 된다. 바위에 부딪
        사실을 전혀 의심하지 않는다.                                힌 물의 힘은 세월의 풍상을 견뎌낸 자연의 힘을 상징하지만, 작가의 심상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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