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9 - 전시가이드 2022년 09월 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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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보도자료는  crart1004@hanmail.net  문의 010-6313-2747 (이문자 편집장)






































                         Dancing Arirang 20-001, 72.7×60.6㎝, acrylic on canvas, 202  Dancing Arirang 20-002, 60.6×72.7㎝, acrylic on canvas, 2022






                              백덕현은 생김새와 모양이라는 의미의 형태(形態)에서 모양의 태(態)가 지닌 능동성에 집중한다.
                                  주어진 생김의 형(形)에서 어떻게 변화될지 모르는 어떤 모양의 태(態)를 찾아간다.
                                        그래서 그의 작품의 결과에 대해 ‘무태(無態)드로잉’이라 한다.






            형태(形態)는 생김새와 모양이다. 형(形)은 가시적이지만 태(態)드러나지 않은 마   기억하고 있거나 생각이나 관념의 영역을 벗어나길 희망한다.
            음생김이다. 물감의 흩어진 상태를 모양이라고 할 수 있지만 생김새를 그리고자      그가 추구하는 ‘무태(無態)드로잉’은 손으로 그리는, 학습에 의한 익숙한 방법에서
            한 것이 아니라 마음의 근원과 속 깊이 묻힌 잊어진 무엇에 대한 탐구 드로잉이다.   벗어나 있다. 중세시대 전쟁터에서 성벽을 향해 날리던 기구에 실린 거석(巨石)처
            기억이나 경험의 것이 아니라 이미 가지고 있던 속성이나 본래 지니고 있던 그것     럼 물감 덩어리를 날리기도 한다. 손으로 내리친 힘에 가중이 붙어야 가능한 물감
            에 대한 접근이다. 그래서 백덕현은 생김새와 모양이라는 의미의 형태(形態)에서     날리기에는 손보다 힘센 망치를 사용한다. 기구에 의해 날아가는 물감이 캔버스에
            모양의 태(態)가 지닌 능동성에 집중한다. 주어진 생김의 형(形)에서 어떻게 변화   안착한다. 어떤 형태로 일어날지 예측이나 가늠이 불가능하다. 물감을 날리는 속
            될지 모르는 어떤 모양의 태(態)를 찾아간다. 그래서 그의 작품의 결과에 대해 ‘무  도감에 인위를 가할 뿐이다.
            태(無態)드로잉’이라 한다.
                                                            주석 튜브에 가득한 물감을 터트리기도 한다. 날아서 안착하는 색의 결과가 아니
            상실의 가치를 찾아간다. 무엇을 잃어버린 것의 분실과는 다른 영역이다. 상실은     라 튜브에 갇혀 있다가 터지는 압력에 의한 분산과 확산의 실험이다. 여기 덧붙여
            가치 있는 대상과의 단절이나 박탈의 구성이다. 물건이나 형태가 있는 무엇을 잊     때로는 바람 가득한 풍선이 날아가는 궤적을 따라 간다거나, 떨어지는 낙엽의 길
            었거나 손실했을 때의 상실이 아니라 무형의 것, 마음의 것, 감정의 것과의 단절이   을 눈길로 좇아가는 방법을 쓰기도 한다. 우연으로 만들어지는 결과가 아니라 이
            나 박탈에 의한 상실을 이야기한다. 백덕현의 회화에는 상실의 본래모양에 대한      미 인위(人爲)를 벗어난 본래의 상실감 회복이다. 상실은 극복이 아니라 회복의 영
            규명 노력이다. 소중했던 혹은 가지고 있었던 것에 대한 가치 회복이 아니라 프로    역이다. 이것에 대해 그는 ‘춤추는 아리랑’이라 하였다.
            이드가 발굴해 낸 무의식의 영역과 비슷한 개념이다. 조금 더 영역이 확장된 자신    던져지고, 터지고, 흩어지거나 모아지거나 하는 드로잉은 결과의 형(形)에 집착하
            의 가치영역에서 존재하고 있었으나 인지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모양 찾기다. 무     지 않는 사람의 지닌 본래의 모양에 대한 탐닉이거나 탐구가 된다. 실험이 아니라
            엇인지 인지할 수 없는 영역이기 때문에 다양한 실험과 도전을 잊지 않는다. 손이    회복과 극복에 대한 사유(思惟)의 영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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