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3 - 전시가이드 2022년 09월 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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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보도자료는  crart1004@hanmail.net  문의 010-6313-2747 (이문자 편집장)





























                                             Liquid Drawing_Hangari05 130.3X162.2cm  magenta 02_76X48cm, 2022





                                2022. 9. 20 – 10. 9 갤러리PAL (T.010-2217-3210, 논현로 164길)




             신성한 수묵에 대(對)하여
                                                            아 끼워 넣는 방식이다. 여기에 그가 불러들이는 소재는 이미지 주변을 맴도는 관
             신영호 초대전                                        념체이다. 그의 그림에 곧잘 등장하는 한 가지가 개미다. 개미는 그의 그림에서 하
                                                            나의 문자 형상과 대등한 존재다. 그것은 과거 문인화가나 산수화가가 세계를 이
                                                            해하는 방식과 통한다. 동양의 선인들에게 대나무, 꽃, 산, 바위는 서구 개념에서
            글 : 윤규홍(오픈스페이스 배 아트디렉터/예술사회학)                   보자면 하나의 기호이자 조형의 단위였다. 전통적인 초충도의 계승으로도 볼 수
                                                            있는 이 시도는 한편으로는 장난스럽게 보인다. 하지만 모필을 써서 완성하는 개
                                                            미 형상은 작가의 감성과 이론을 작품에 용해해 채우는 논리적 재투입(re-entry)
            작가 신영호의 동양화는 이 장르의 관객들이 익숙하게 볼 수 있는 작업은 아니다.    의 방식인 셈이다. 이는 저마다 방식이 다를지언정, 동양의 회화와 서예가 공통으
            논리상 신영호의 작업은 전통보다 혁신을 향하는 콘템포러리 아트이다. 그의 예술     로 갖는 특징이다.
            이력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중국으로 건너가서 서예를 익힌 것이다. 북경 중    이러하듯 정교하게 설정한 개미는 동시에, 그의 미술에 입문하는 사람들에게 꽤
            앙미술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을 때 그가 매달린 주제는 서예와 회화를 비교하는      큰 장애물이기도 하다. 너무나 명확한 대상 그 자체인 소재가 가진 지시성 때문
            연구였다. 애당초 그가 동양화를 전공했으므로 당연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     이다. 이 즉물적인 특성으로 말미암아 작품의 매력이 깎일 우려가 있더라도, 그
            지만 회화와 서예는 상당히 다른 영역의 예술 체계다. 어쩌면 그는 서예를 통해 예   건 처음부터 작가가 감당해야 하는 몫이었다. 온갖 알레고리와 시각적 충격 요법
            술의 돌파구를 찾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유학을 떠나기 전에 당시 한 무리의    을 강박적으로 고안하는 다른 많은 동시대 미술가에 비하면 오히려 곧고 점잖은
            작가들이 비구상적인 수묵 작업에 몰두하는 것을 목격했지만, 그 경향과도 어느      면일 수도 있다.
            정도 거리를 두었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그때 품었던 의문을 스스로 답을 내리기
            위한 선택이 중국행이었을 것이다.                              최근에 신영호 작가는 인장(印章)을 통하여 표현의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동양화
            그 물음은 이를테면 “동양화는 서양화라는 현대의 문화 우세종에 대항하는 진영인     에서는 대략 천년에 달하는 시간에 걸쳐 낙관이 전해져왔다. 도장 찍기는 동양인
            가? 아니면 서양화 속에 합병되어 서브 장르로 기능하는 부분인가?”, “이른바 추상  에게는 매우 익숙한 서명의 표식이었고, 미술 연구에서 그것은 고서화를 감식하는
            이 구상으로 이룬 이미지를 최소한도로 제시한 방식이 서구의 개념이라면 동아시      유력한 근거이다. 그런데 인장이 부지불식간에 그 자체로 감상의 대상이 되어 온
            아에서 그건 어떤 의미가 있는가?”, “예로부터 이어져 온 전통은 현대 속에서 어떻  것도 맞다. 인장 또는 도장에 관한 학술적인 연구는 예컨대 문화인류학과 농업경
            게 설정되어야 하는가?”와 같은 생각이었다. 이러한 물음은 단순히 개인이 가지는    제학 같은 분과 학문에서 간간이 이루어져 왔다. 하지만 현대미술에서 그 논의나
            영역이 아니었고, 역사 속에서 구성될 수밖에 없는, 하나의 문예적 운동이었다. 신   분석이 이루어지지는 않은 실정이다. 이는 학문 연구를 담보로 창작을 수행하는
            영호 작가가 해답을 찾아 떠난 길이 실천이었다면, 그것은 예술과 인문학의 움직임    신영호라는 개인의 정체성에 들어맞는 시도이다. 고전 회화작품의 형식인 탓에 그
            이 작품과 수고(self-description)를 통해 실체화된 현재에 이르렀다.   상투성을 현대미술에서 기피하는 경향이 뚜렷한 인장은 예컨대 가벼운 복고 취향
             신영호 작가는 동양화의 전통적인 장치를 본인 작품에 연출된 장면으로 깔고 현     의 시도가 아니다. 그것은 기호와 조형성을 연구하는 또 다른 시도로써, 서예 연구
            대적 회화를 완성한다. 그게 뭔가 하면, 동양회화의 오래된 소재를 다른 것들로 갈   와 리퀴드 드로잉과 연결되어 형성된 미술 실천의 결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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