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4 - 전시가이드 2022년 01월 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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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정의 전시포커스
수양벚꽃, 70x100cm, 순지에 수묵채색, 자개, 2021 살구나무2, 80x80cm, 순지에 수묵채색, 자개, 2021
김아영의 먹꽃 드로잉, 는 김아영 작가는 말 그대로 사군자화의 모티브를 오늘에 맞게 변주한 ‘감각
적 꽃’에 매료된 것이다.
“꽃이다.” 여백과 대상에 집중한 ‘실존적 꽃의 생동감’
작가가 처음 붓을 잡은 것은 대학원 1학기 때인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
다. 첫 개인전이 있기까지 이론과 실기를 5년간 병행한 이유는 ‘득지심응지
글 : 안현정 (미술평론가, 예술철학박사) 수(得之心應之手)’ 때문이다. 마음에서 이루어진 바가 손에서 저절로 움직인
다는 뜻으로 중국 오대(五代)의 형호(荊浩, 10세기 전반)가 《필법기(筆法記)》
에서 한 얘기다. 작가가 대상을 대하는 태도는 대상에 깃든 성정을 마음 안에
이룬 이후에 손이 답하여 표현하는 방식인데, 이는 의재 허백련(毅齋 許百鍊,
1891~1977)이 화산수법(畫山水法)에서 언급한 이야기로도 유명하다. 하지
새해를 향한 힘찬 발걸음 속에 봄기운을 미리 느껴보는 따뜻한 전시로 1월의 만 작가는 현대작가답게 ‘득지문응지수(得之文應之手)’를 추구한다. 한국미감
전시포커스의 문을 열고자 한다. 인사동갤러리 이즈에서 이달 말일부터 2월8 을 ‘학문’으로 공부한 이후에, 손의 방식들을 배워냈다는 뜻이다. 내실이 없는
일까지 열리는 김아영 개인전 《먹꽃 드로잉, 꽃이다》 는 작가의 10번째 개인 자질구레한 외형에서 벗어나, 정신과 기교가 융화를 이룬 상태인 이 언어들
전이자 전통과 현대를 아울러 읽을 수 있는 한국미감의 현재성을 다시금 재 은 모두 장자의 시각에서 해석된 것이다. 전통 사군자화보다 추상적이고 깨끗
고하는 기회를 마련한다. 한 붓질에 감동을 받은 김아영 작가는 난치는 법부터 시작하여 사군자화가 손
에 익을 때까지 작품을 발표하지 않았다. 작품 안에 자신만의 세계를 표현하
선이론 후작업, 한국미를 통해 ‘먹드로잉’과 만나다. 게 된 이후 개인전을 열었고, 이후 한해도 빠지지 않고 새로운 미감들을 얹어
먹꽃 드로잉은 우리에겐 익숙하지 않은 단어이다. 말 그대로 ‘먹으로 그린 꽃’ 냈다. 울산인 고향과 가까운 경주를 찾은 작가는 흐드러진 벚꽃이 세상을 아
을 서구의 드로잉 개념과 결합하여 ‘전통’을 단순히 과거의 것으로 읽기보다, 름드리 눈꽃으로 수놓는 것을 보고 자연과 어우러진 꽃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현대화된 작가정신 속에서 세련되게 재해석한 것이다. 김아영 작가는 아이러
니하게도 미술대학에서 그림을 배우지 않고 한국미술사를 먼저 공부한 독특 김아영 작가는 "점점 붓질과 흐늘흐늘한 모필의 느낌을 통해 한국미에 빠져
한 이력의 소유자다. 덕성여대 미술사전공에서 박은순 교수에게 한국미술사 들었다. “한국미란 깨끗함이다. 깨끗함은 어디에서 오는가? 여백과 획의 발
를 사사하고, 이화여대 대학원 미술사 전공에서 홍선표 교수의 지도로 「『대한 견에서 온다. 한국미가 아름답다는 사유는 그 자체로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민국미술전람회』 사군자화 연구 : 난(蘭)·죽(竹)을 중심으로」를 주제로 논문 - 작가 인터뷰 중에서 -
을 발표했다. 해방이후 국전(國展)시대의 사군자화(四君子畵)는 서예와 동일
시된 회화입문 과정이었으나, 근대교육이 서화에서 미술로 전이된 까닭에 봉 첫 개인전 《너는 벚꽃으로 온다. 나는 화안한 꽃 속이다.》 라는 전시 제목은 앞
건시대의 유물로 치부되었다. 작가는 본인의 연구서에서 “서예와 동일시됨에 서 설명한 미감을 현실감 있게 반영한다. 작가에게 한국미란 자연을 그대로
따라 정체성을 잃고 그 가치가 폄하”된 사군자화는 “국전에서도 미술이냐, 아 화폭에 옮겨낸 ‘시공간의 여백’을 의미한다. 군더더기 없는 깨끗한 필획, 그 안
니냐를 놓고 끊임없이 논란이 일었고, ‘미술’의 외곽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 에서 살아 움직이는 꽃과 자아의 현재적 대화, 전통을 배우지 않았다면 담아
다.”고 서술한다. 하지만 작가가 선(先)학문 이후, 자신의 화폭에서 살려낸 것 내지 못했을 아름드리 의미들이 형식과 더불어 빛나는 까닭은 순수한 동기로
은 사군자화가 아닌 ‘현대적 미감’을 품은 ‘봄꽃’이었다. 한국미술사를 공부하 빠져든 ‘먹꽃을 향한 순수열정’ 때문일 것이다.
며 ‘한국적 아름다움’에 푹 빠진 작가는 월전 장우성(月田 張遇聖, 1912~2005)
을 사사한 조문희 선생의 화실에서 5년간 전통적인 도제방식으로 먹드로잉을 ‘먹꽃’이 ‘드로잉’과 만났을 때
체화시켜 나간다. 작가는 오늘날 미술대학에서 도외시하는 수묵드로잉의 방 작가는 네 번째 전시부터 ‘드로잉’이라는 단어를 전면에 사용한다. 그렇다면
식을 도제식 아카데미즘을 통해 연마한 셈이다. 먹에 꽂힌, 먹꽃을 드로잉 하 왜 드로잉인가? 김아영은 “모더니즘의 경향 속에서 예술이 창조성·개성·자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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