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0 - 전시가이드 2024년 07월 이북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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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가이드 쉼터
얼치기 농장주
글 : 장소영 (수필가)
성당을 오가는 모퉁이 길에 자그마한 채전이 있다. 러지게 펴 푸른 농장 속 화원 같았다. 고수의 낌새가 나는 이 두 농장 말고는
거의 작물이 비슷비슷하다는 것도 신기한 일이었다.
여름이 무르익어가는 요즘은 완두콩 수확이 끝나고 새로운 작물이 푸릇푸릇
자리를 잡았다. 땅콩이 심겨 있고 양배추도 제법 튼실하게 자란다. 고구마 순 초여름 단비가 내린 다음날 밭에 가니 상추가 바늘 꽂을 공간도 없어 보이게
이 쭈욱 뻗어 콩 줄기와 손을 맞잡고 있다. 철따라 해마다 작물도 다양해 눈여 수북수북 열을 지어 자라 있었다. 쭈그리고 엎드려 함께 올라온 잡초를 제거
겨 살펴보게 된다. 언제 보아도 참으로 정갈하다. 한 번도 일하는 모습을 보진 하는데 등 뒤에서 혀를 끌끌 차는 소리가 난다. 돌아보니 농장 주변 마을 노인
못 했지만 가꾸는 이의 바지런함과 내공을 가늠케 한다. 이 우리를 보고 어이없는 표정으로
“화단 가꾸슈?”
언제나 이곳을 지날 때면 어제인 듯 지나간 세월이 바짝 붙어 함께 걷는다. 하신다.
“아니, 상추를 이러코롬 심어 논 사람이 어디 있당가?”
집 근처 농협에서 운영하던 주말농장 터엔 이젠 고층 아파트가 즐비하다. 논 연이어 핀잔이다. 영문을 몰라 눈을 깜빡이니 상추는 서너 포기만 있어도 너끈
밭이 사라지고 대단위 아파트가 시선을 하늘로부터 끌어 내리니 상전벽해라 한데 온 밭이 상추 투성이냐는 것이다. 게다가 흩어서 뿌려야 하거늘 이렇게
는 말이 딱 어울린다. 그 때는 외진 곳이라 농촌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이곳 고랑을 내고 빽빽하게 씨앗을 뿌리면 안 되는 거라며 웃어버리신다.
에서 우리는 작물을 가꾸는 즐거움을 만끽하기로 했다. 첫 해 봄. 10평의 농
장주가 되어 흙을 고른 곳에 ‘정규네 농장’이란 팻말을 박아 놓고 펼쳐질 기대 이렇듯 어이없을 만큼 서투르지만 왕초보 농사꾼의 정성만은 충만했다. 연둣
로 잔뜩 들떴다. 빛 새싹이 주는 생명력에 반하고, 가꾸어간다는 성취감에 취해 밀식한 아기
상추 솎아주기 부터 소매를 걷어붙이기 시작했다. 이른 아침 집안 일이 끝나
마침 종묘상이 집 근처에 있어 작물별로 씨앗을 밭에 뿌리기로 했다. 첫 농 기 무섭게 밭을 찾아가고 뙤약볕에 얼굴을 그을려가며 상추 이파리 하나도 허
사로 선택한 작물은 너무도 당연하게 상추였다. 그 다음엔 아욱이며 들깨, 열 투루 버리는 일이 없었다. 잠깐이라 생각한 시간이 어느새 정오가 되는 일이
무를 파종하고 고추모종을 챙겨 밭으로 나섰다. 언제나 차 트렁크엔 밀짚모 다반사고, 트렁크는 커다란 봉투에 풋고추와 상추가 차곡차곡 쟁여져 농산물
자. 물 조리개, 호미, 장갑이 대기하고, 비닐 포대와 비료까지 완벽히 준비된 창고가 되곤 했다.
모범생이었다.
농사머리가 부족해 빚은 상추잔치는 장마가 질 때까지 우리와 이웃들의 밥상
이웃 작물은 무엇인가 둘러보는 재미도 쏠쏠한데 바로 옆 농장주는 노부부였 위에 갖가지 색깔과 식감으로 성찬을 누리는 행복으로 승화됐다. 넘치는 상
다. 검은 비닐을 이랑에 덮어씌우고 서리태를 심었다. 위쪽 농장주도 더 높은 추 덕에 매끼 개구리 울음주머니 마냥 양 볼이 빵빵하게 부풀어 오르게 쌈을
두둑으로 돋우더니 그 위를 비닐로 감쌌다. 그러더니 그 비닐 위에 콕콕 구멍 우물거리며 먹어야 했지만 물리지 않음도 기이한 일이었다. 오히려 이 신선
을 내 조각 난 감자를 심는 것이다. 초여름이 되니 흰색, 자주색 감자꽃이 흐드 한 맛을 어디서 맛보겠느냐는 희열이 밭으로 길을 재촉 했다. 더구나 이웃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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