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78 - 샘가 2025.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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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길을 즐겨 다니셨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예
수님의 복음전파의 대상에 사마리아인도 포함된다는 의미입니다. 사마리아는 망보는
언덕이란 뜻입니다. 북 이스라엘 오므리 왕이 수도로 정한 곳이며, 앗수르가 북왕국을
점령한 뒤에 취한 인종 및 종교의 혼합 정책으로 인해(왕하 17:24-40) 다수의 사마리아
주민들은 앗수르 여러 지역의 이주민들과 혼혈되어 혈통과 신앙의 순수성을 상실하였
으므로 사마리아라는 호칭에는 경멸적인 어조가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당대의 통념을 깨뜨리시고 사마리아를 통과하십니다. 여기엔 이웃 개념
의 확대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유대인들을 이웃을 자기 민족에 국한했습니다. 이방인은
적대하거나 경멸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사마리아를 통과하신다는 것은 이런 통
념을 깨뜨리신 것입니다. 우리도 우리 안에 가지고 있는 통념을 깨뜨려야 합니다. 영호
남 지역 통념, 보수 진보 이념의 벽을 깨뜨려야 합니다. 오직 복음의 관점에서 보아야 합
니다. 이것이 주님의 시선입니다. 우리가 넘어야 하고 깨뜨려야 할 벽, 감정, 통념을 넘
어서기 바랍니다. 요나가 니느웨에 대한 적개심으로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지 않았던
것처럼 우리 안에 하나님의 말씀보다 앞서는 감정과 통념이 있다면 깨뜨려야 합니다. 예
수님은 세리, 창녀, 사마리아인, 이방인 그 누구도 이웃에서 제외하신 경우가 없었습니
다. 더 큰 사랑이 필요합니다.
주님이 갈릴리로 가시는 것도 사마리아를 통과하시는 것도 오직 하나님의 나라의 시
선, 복음의 시선을 가지고 만납니다. 따라서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시선은 주님이 보시
는 곳이어야 합니다. 주님의 눈높이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의 시선으로 살아갈 수 있기
를 기도하여야 합니다.
2. 수가성에 이르신 예수님
주님은 수가라는 동네에 이르십니다. 수가는 그 이름의 의미가 정확히 알려지지 않고
그 규모도 잘 알 수 없지만 그리 작은 촌락은 아닌 것 같습니다. 한편 야곱의 우물이 있
었던 곳이라는 것을 보면 세겜일 것이라고도 합니다. 세겜은 그리심 산과 에발 산 사이
에 있습니다. 세겜은 사마리아의 수도였습니다. 그러니까 주님은 사마리아의 중심으로
가신 것입니다. 그러나 어느 동네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곳에서 누구를 만났느냐
가 중요합니다.
주님은 수가에서 야곱의 우물이 있는 곳에서 피곤하여 쉬십니다. 때가 여섯 시쯤(정오)
되었습니다. 주님은 아침부터 예루살렘에서 출발하여 갈릴리로 이동하셨을 것입니다.
내내 걸으셨으니 피곤하셨습니다. 주님은 완전한 사람이셨기에 피곤함을 느끼셨습니
다. 사도 요한이 예수님의 완전한 신성을 강조하면서 동시에 인성을 강조한 점은 의미심
장합니다. 주님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인간적 연약함을 완전하게 경험하셨기에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십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히 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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