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9 - 2020년 12월 전시가이드
P. 69
From chaos to chaos, 130.3x162.1cm, Oil on canvas, 2020 From chaos to chaos, 130.3x162.1cm, Oil on canvas, 2020
다양한 색들이 금색, 은색과 어우러지고 있다. 흐르다 이내 멈추어버리고, 다 다양한 색들을 켜켜이 쌓아나가며 하나의 색처럼 보이게 하기도 하고, 어느
시 또 흐르기를 반복하며 생성되고 소멸하기를 거듭하고 있다. 욕망의 흔적 새 그것을 다시 퍼져 나가게 하며 다양한 색으로 보이게도 한다. 하나로 보이
이다. 그러나 격렬하지도, 자신을 내세우지도 않는다. 그것은 욕망의 흔적마 지만 하나가 아니다. 하나가 아니지만 하나로 보이기도 한다. 단색화이면서
저 반복되는 행위로 인해 겹겹이 포개어지고 있는 시공간에 의해 정화되어 가 도 단색화가 아니다. 금색, 은색과 어우러진 다양한 색들은 지금, 이 순간에
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작가에 의해 포개어진 시공간의 중첩된 이미지들 도 진화를 계속하고 있다. 그렇게 그는 단색화 이후 우리 회화의 새로운 지평
은 오랜 세월을 자신과 싸워오며 묵묵히 기다렸던 그의 삶, 그 자체이다. 그의 을 만들어 가고 있다.
작품을 보면 작가의 수많은 손길이 닿아 있음을 알 수 있다. 작가는 그렇게 자
신을 응시하고 있다. 반복하며 생성되는 흔적과 침묵으로 자신을 드러내고 있 색의 향연이 펼쳐진다. 그러나 다시 사라진다. 모든 것이 모호하다. 그러나 주
다. 수많은 반복적인 행위가 있었음에도 단정하면서도 정제되어 보이는 화면 체와 대상 사이의 욕망은 결핍과 실패에서 비롯되듯이 모호한 존재가, 모호한
이 그것을 말해 주고 있다. 그렇게 생성되고 소멸하기를 거듭하는 과정을 통 사물들이 어느새 우리를 숨 쉬게 한다. 그 지점에서 예술을 생각한다. 인생을
해 색은 퇴적되지 않고 흐르기 시작하며 선(線)이 나타난다. 그러나 그것은 선 생각한다. 두 번의 큰 수술을 겪고 죽음의 그림자를 떨쳐내며 10년 동안의 오
이 아니다. 작가는 그의 작가노트에서 그것을 “산(山)과 산 사이에, 산과 물(水) 랜 기다림 끝에 화명 이도규로 우리 앞에 다시 나타난 그의 아픔과 고독은 순
사이에 존재하며 우리의 숨결이 흐르게 하는 기맥(氣脈)과도 같은 통로, 즉 여 수하고 응축된 조형 언어로 인해 순화되었다. 화려하지만 자신을 뽐내지 않는
백(餘白)이다.”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렇다. 그것은 반복적인 생성과 소멸 다. 은밀하면서도 고상한 정취를 느낄 수 있다. 금색과 은색의 화려함과 수없
의 과정에서 생성되는 틈으로, 기(氣)가 흐르는 통로다. 이렇게 작가는 우리의 이 반복되는 행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정하면서도 정제된 느낌을 주는 화
정신을 자신만의 어법으로 담아내며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다 면은 단색화 이후의 새로운 비전을 담고 우리를 또 다른 세계로 인도하고 있
시 말해 그의 화면에 나타나는 선은 선이 아니라 미세한 틈이며 인간과 사물 다. 아울러 그것은 진정한 자유인이 되기를 갈망하는 그의 열망이 담겨있기 때
사이의, 사물과 사물 사이의 존재하는 ‘그 무엇’으로 거듭나고 있기 때문이다. 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이러한 작가 이도규는 화면 안에 우리 모두의 숨결이
흐르기를 바라고 있다. 우리의 숨결이 흐르게 하는 기맥(氣脈)과도 같은 통로,
한편, 작가는 카오스chaos로 돌아가고자 하는 열망을 담고 있는 시간적 밀도 그곳으로 바로 당신과 우리 모두의 숨결이 흐르기를 바라고 있다.
의 프로세스를 통해 그의 내면을 화면에 내재화시켜 나가며 생동하게 한다.
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