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8 - 전시가이드 2021년 11월호 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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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보는 전시
COMPOSITION, 68×130cm, Color on korean paper, 2019
2021. 10. 1 – 10. 9 갤러리롤랑 (T.010-3069-3140, 삼청로)
채색작업을 중심으로 만 짜이는 작품, 옅고 짙은 사각형 이미지들을 다양한 크기로 조합하는 작품,
때로는 점이나 하트 모양의 이미지를 넣는 작품 등 조형의 변주라는 방법에
정선진 개인전 빠져 10여 년을 보냈다. 그러다가 방패연을 닮은 작은 크기의 사각형 이미지
가 화면 전체를 채우는, 연속적인 패턴의 전면회화 형식으로 변화하게 되었다.
작은 크기의 사각형 이미지가 화면을 채우는, 즉 그리드 작업은 수묵의 심오
한 표현, 그 깊이를 탐색하는 이전의 표현 방법과는 다른 입장이다. 평면적인
글 : 신항섭(미술평론가)
이미지의 공간에 머물러 있던 시선을 세상 밖으로 돌리게 되면서 밝은 햇빛
과 상쾌한 공기와 계절의 변화를 감지하는가 하면 색채에 관심이 생겼다. 단
세상과의 소통을 매개하는 사각형의 프레임 지 시선을 외부로 돌리는 일만으로 화선지에는 별안간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정선진은 최근 수묵 중심의 작업에서 채색 중심의 작업으로 변화했다. 오랫 이전까지 관념적인 세계를 소요했던 사실을 상기할 때 전혀 다른 태도 변화이
동안 수묵에만 머물렀던 사실을 상기하면 의외랄 수 있는 변모인데, 이는 세 다. 이를 통해 작업에 대한 새로운 이해방식을 발견하게 된 셈인데, 그 중심에
상을 바라보는 시각의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 수묵에만 몰두했던 이전의 작 채색이 자리하게 된다. 꼬리연이나 방패연은 세상 밖의 풍경이다. 하늘이라는
업에서는 한지와 수묵과 모필이 지어내는 표정 자체에만 집중했다. 그러기에 무한공간에서 펼쳐지는 연의 비행을 유심히 관찰하면서 조형적인 영감을 얻
한지를 벗어나는 다른 세상을 응시할 겨를이 없었다. 왜냐하면 수묵 작업에서 었다. 반면에 연속적인 패턴의 그리드 작업은 시선을 창밖으로 돌리면서 시작
는 이미 형식적인 틀이 존재했고, 그를 기반으로 한 조형의 변주라는 방식으 된, 세상에 대한 새로운 관심의 환기라고 할 수 있다. 그 관심을 매개하는 것이
로 작업이 진행됐기 때문이다. 다름 아닌 사각형의 창이다. 사각형의 방패연이나 사각형의 창틀은 동일한 이
미지의 프레임이다. 그가 세상을 바라보고 느끼는 방식은 창을 통해서 이루어
수묵에도 오채가 있다고 하는데, 농담 변화로만 이루어지는 수묵의 다양한 표 진다. 창을 통해 바라보고 느끼는 세상은 감성을 자극하고 삶에 대한 새로운
현을 주시하는 것은 색채의 개념과는 다른 관점이다. 수묵이 가지고 있는 표 감흥과 기쁨을 가져왔다. 마치 새로운 발견처럼 불현듯 다가온 햇빛이며 공기
현의 다양성을 검증해나가는 일련의 평면 이미지 작업에 몰두한 것은 이와 무 며 바람, 그리고 눈과 비 또는 안개와 같은 자연현상은 조형적인 영감을 불러
관하지 않다. 평면처럼 보이는 면적이 넓고 큰 형태의 사각형 이미지들이 짙 들였다. 그는 거기에 자연스럽게 반응했고, 그 결과가 채색 이미지로 나타난
은 먹색만으로 표현되는가 하면, 반대로 아주 연한 담채의 사각형 이미지들로 다. 시각적으로 인지되는 사실과 더불어 마음을 움직이고 감정을 흔드는 자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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