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5 - 전시가이드 2020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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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를 모자로 쓰고, 90.9×72.7cm, Acrylic









            사라진 오늘의 현실에서 그는 불우한 미아처럼 방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엘리       거리의 신호등은 ‘이다’와 ‘아니다’의 2분법적인 코드의 체계다. 우리는 이 코
            트의 언어가 파리의 본거지에서 시작하여 1980년대의 미국에서 완전히 사라       드에서 어느 한 쪽을 택하면서 만족한다. 하지만 엘리트의 코드는 이 2분법의
            졌다는 사실은 이미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그렇다면 우리 앞에 있는 임경숙       선택을 거부함과 동시에 긍정하는 추상적인 코드다. 우리는 메리그라운드의
            의 존재의의는 무엇이라고 해야 할까. 사라진 엘리트의 언어가 다시 부활한다       목마를 타고 빙빙 도는 아이가 아무것도 가리키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는 이야기가 되는 것일까. 엘리트의 언어가 부활한다면 그것은 모더니즘이 우
            리에게서 다시 부활한다는 뜻이다.                              아이의 시점이 끊임없이 이동하며 대상을 배신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엘리트
                                                            의 시점은 언제나 대상과 한편이다. 동시에 이동하고 동시에 멈춘다. 엘리트
            우리가 사용하는 일상적인 언어는 손가락으로 가리킬 수 있는 대상에 국한되        의 언어가 초현실주의로 전개되었던 것은 단순히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
            어 있다. 하지만 엘리트의 언어는 손가락으로 가리킬 수 없는 세상을 소통시       의 산물이 있었던 이유만이 아니다. 시점을 고정시킨 기독교 문명에 대한 반
            키는 언어이다. 임경숙의 회화가 시도하는 조형언어를 엘리트의 언어라고 하        발이기도 하다. 임경숙의 캔버스에서 샤갈의 화풍을 연상시키는 것도 시점의
            는 것은 이런 뜻이다. 우리의 일상에서는 두 개의 대상(의미)이 하나의 공간      자유이동이 가져오는 조형효과다. 화가는 그의 시에서 이 효과를 <소유가 아
            을 동시적으로 공유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엘리트의 언어는 그 한계를 넘어        닌 존재>의 획득이라고 말한다. 소유가 되지 않는 존재가 무엇일까. 소유가 될
            서려한다. 모더니즘의 언어가 3차원의 울타리를 넘어서며 추상화로 전개되         수 없는 존재란 손가락으로 가리킬 수 없다고 확신하면서도 그 확신을 부정하
            었던 이유이다.                                        는 의식자체를 말한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불교에서 말하는 ‘벗어남’의 존재
                                                            론이다. 임경숙은 그의 자작시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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