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9 - 2019년02월전시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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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보는전시


                                                            얻고자 하는 얼룩말의 줄무늬는 결코 한 마리의 야생동물이 몸에 두르고 있는
                                                            특정한 무늬 자체가 아니다. 그것은 이미 그것을 바라보는 포식자의 시선 속
                                                            에 깃들어 있으며 그것을 욕망하는 마음 안에 덩굴식물처럼 똬리를 틀고 있다.

                                                            화가의 시선은 잃어버린 대상에 대한 욕망의 강도만큼 날이 선 저항으로 시위
                                                            가 팽팽해진다. 그리하여 작가는 어린 시절 고향의 자연에서 얻을 수 있었던
                                                            여유롭고 풍족한 공간의 기억을 소환하여 도회적인 회색의 공간에 있는 정물
                                                            과 마주하게 한다. 깔끔한 접시 위에 생생한 빛깔의 과일들과 원초적인 색깔
                                                            의 꽃들이 놓여있고 때로는 그 위에 어쩐지 낯익은 얼룩말들이 손에 닿지 않
                                                            는 환영처럼 천연덕스럽게 서있다. 얼룩말들은 높은 채도의 색깔들이 백열(白
                                                            熱)하는 사바나의 꽃밭이나 열대수림 위에도 등장하지만 그들의 원경에 펼쳐
                                                            진 너른 여백은 이러한 풍경의 순도를 한껏 끌어올려 묘사된 대상을 정제된
                                                            갈증을 내뿜는 불가사의한 정물로 만든다.
                                                            초현실주의자들은 막다른 세계에 대한 저항과 잃어버린 상상의 영토를 되찾
                                                            기 위한 극적인 방법으로 꿈이나 무의식이 빚어내는 괴이한 세계에 천착하였
                                                            다. 그들은 이러한 수단을 너무 맹신하고 과도하게 추구한 나머지 결국 상상
                                                            과 현실 사이의 견딜 수 없는 괴리에 빠져 양쪽에서 소외되는 양상을 보였다.
                                                            그러나 작가 서영남이 접근하는 초현실적 상상의 세계는 먼 곳에 있는 동식물
                                                            들을 아주 자연스럽게 차용함으로써 일견 낯선 분위기를 발산하면서도 어딘
                                                            가 현실에 가까운 듯한 분위기를 풍긴다. 그것은 작가가 밝힌 바와 같이 동물
                                                            의 왕국이나 자연의 신비와 같은 티브이 화면에서 이미 익숙해진 대상들을 조
                                                            합하여 나름 꽤 친숙한 풍경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그 풍경은
                                                            다만 꿈이나 무의식의 소산이라기 보다는 미디어를 통해 대중에게 일반화된
                                                            이미지에서 차용된 현대의 도시적 일상에 간접적으로 기반을 두고 있다. 그곳
                                                            에는 문득 작가가 어렸을 때 빠져들었던 창공처럼 무한하게 펼쳐진 자연의 현
                             unusual landscape, 162×112cm, oil on canvas, 2018
                                                            실공간과 여러 매혹적인 대상들이 부딪치며 만들어내던 꿈과 같은 이미지들
                                                            이 작가가 현재 몸담고 있는 빽빽한 도시의 일상 속으로 백일몽처럼 되돌아온
                                                            다. 퇴색한 현재와 생생한 과거가 겹쳐진다. 이로서 작가가 회귀하는 곳은 고
                                                            향 속의 공간인 듯 하지만 기실은 고향의 시공을 딛고 일어나 구축한 또 다른
                                                            제3의 공간이다. 그러기에 작가가 그곳으로 탈출하는 일은 현재의 고갈된 일
                                                            상 깊숙한 곳에서 단숨에 낙원의 한복판으로 도약하는 일이다.

                                                            그의 이국적인 얼룩말들을 비롯하여 당나귀나 치타 나비 등, 그 밖의 몇몇 다
                     2. 11 - 2. 20 아트스페이스퀄리아
                                                            른 동물과 곤충 또는 화려한 색깔의 열대식물이나 꽃들은 이처럼 그들이 있
                        (T.02-379-4648, 평창동)                어야 하는 열대 공간의 사바나쯤에 있으면서도 어딘가 도회적으로 고립되고
                                                            정제된 공간에 소외된 듯한 자세로 혼자 있거나 몇 마리 씩 무리를 지어 있
                                                            다. 이는 일찍부터 고향을 떠난 작가가 그 동안 몸담고 있던 도시적 현실 공
                                                            간에서 느꼈음직한 소외로부터 비롯되었을 어딘가 다른 친숙하고 평화로운
                                                            곳에 대한 뿌리깊은 열망을 투영한다. 그곳을 작가는 "달콤한 풍경"(sweet
                                                            landscape)이라 이른다. 우리가 사는 이곳을 벗어날 수 없는 만큼이나 우리
                                                            에게 떠나온 고향은 멀고도 달콤하다. 고향은 바로 저곳에 대한 이곳의 달콤
             떠도는 허기(虛飢)를 위한 달콤한 풍경                          한 욕망 속에 있기 때문이다. 또한 서사 없는 깔끔한 풍경은 오히려 그곳에 대

            서영남 개인전                                         한 무언의 그리움을 더한층 강화한다. 이 지점이 바로 작가가 구현해 낸 작
                                                            품 속의 낯설고도 친숙한 공간과 세계가 자신의 진정한 고향이 되는 곳이다.
                                                            인간은 원시부족 때부터 생존에 필요한 동물들을 돌도끼나 창으로 직접 사냥
             글: 서길헌(미술비평, 조형예술학박사)
                                                            을 해서 잡았다. 이 같은 행위는 이미 아주 오래 전에 간접적인 교환행위로 바
                                                            뀌었으며 오늘날 직접적인 생산에 종사하는 몇몇 직업을 빼고는 대부분의 인
                                                            류가 자신의 환경과 동떨어진 곳에 있는 먹거리를 화폐나 신용카드를 사용하
            얼룩말의 줄무늬는 그것을 쫓는 이의 시선을 흩뜨리고 아무도 닿을 수 없는 곳      여 간접적으로 획득한다. 이러한 간접적인 수단을 통한 소유행위는 우리가 자
            으로 달아난다. 시선이 품은 욕망의 대상으로서의 줄무늬는 시선으로부터 비        주 접하는 이미지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디지털 기기의 편의성에 힘
            껴나 더욱 멀어짐으로써 시선의 욕망을 한층 더 자극한다. 얼룩말은 죽을 힘       입어 어느 곳에서든 우리는 원하는 이미지를 필요한 만큼 빛의 속도로 접할
            을 다해 위험으로부터 벗어나지만 얼룩말이 달아나는 것은 결코 자리를 피하        수 있다. 그렇게 설렘이 없이 쉬이 얻어지는 것들은 진정으로 소유되지 못하
            는 것만이 아니다. 얼룩말은 줄무늬의 생생한 자극과 유혹을 결코 산채로 내       고 발광다이오드의 빛이 명멸하는 디지털 기기의 화면 속에서 신기루처럼 시
            어주지 않는다. 그들은 달아나거나 더욱 갈증을 유발하는 무리 속에 섞여 심연      들어간다. 대량의 디지털 이미지들은 그토록 영혼 없는 와이파이와 블루투스
            의 저편으로 물러남으로써 시선을 쏘는 자의 욕망을 오히려 강화한다. 그들이       의 데이터 파장을 타고 인간의 마음 밖으로 유령처럼 떠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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