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1 - 전시가이드 2021년 05월호 E-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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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titled_oil on canvas_65.2x91cm_2021 Untitled_oil on canvas_65.2x91cm_2021
두터운 임파스토는 아름다움으로 범벅된 향기를 상징한다.
배경의 꽃은 농담과 힘의 변화를 통해 선으로 빠르게 처리된 반면,
이와 반대로 말라버린 사과는 정지된 듯 고정적이어서 대조된다.
간간이 보이는 칠하지 않은 캔버스의 흰 바탕과 라벤더 핑크 덕분에 찬란한 우리의 주의를 끌지 못하는 바로 그 지점에 작가의 이목이 집중된 것이 분명
자태를 뽐내는 화려한 배경은 그 색채와 붓터치만으로도 쨍한 여름 한낮처럼 하다. 한때는 작가의 시선을 환기시키기 위해서 변성이 일어나지 않고 뜯거나
강렬하게 시각을 자극한다. 박미연 작가의 이번 작품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깎는 등의 해체도 불가능한 레디메이드 오브제를 추천한 적이 있는데, 변성의
화려한 배경은 몇몇에서만 선택적으로 나타날 뿐 그 외의 작품들에서는 별도 마지막 단계에 이르러 더는 변화되지 않는 지점에 다다라서야 간파할 수 있는
의 목적을 지향하는듯 한껏 낮은 채도로 이루어져 있다. 왜 배경이 먼저 눈에 극한의 아름다움에 작가는 이미 매료된 상태이다. 이에 대해 작가는 말한다.
들어왔을까. 빠르고 강한 붓터치를 선호하는 내 개인적 취향이 작용되었겠지
만 확장하는 듯한 느낌으로 흩뿌리는 작가의 이런 붓터치가 작가의 트레이트 “잘 익은 사과가 젊음이라면 완전했던 사과가 시간에 따라 변화하고 죽어가
마크처럼 좋았기 때문이리라. 는, 그래서 어느 시점에 이르러서는 완전히 말라버려 정지된 채로 노화되는
데, 미라화된 주름으로 귀결된 사과가 지닌 아름다움을 역설적으로 표현하고
작가의 2017년 라메르에서의 ‘Flower Syndrome’ 전시에서는 전시 타이틀에 자 하였다. 작업은 즐겁게 또한 단시간에 완성되었다. 두터운 임파스토는 아
꽃이 포함된 덕분인지 자연스럽게 이를 연상할 수 있는 다양한 색채의 붓터 름다움으로 범벅된 향기를 상징한다. 배경의 꽃은 농담과 힘의 변화를 통해 선
치가 화면 가득 서로 간섭을 일으키며 보는 이의 눈 속에서 명멸하듯 잔상으 으로 빠르게 처리된 반면, 이와 반대로 말라버린 사과는 정지된 듯 고정적이
로 남았었다. 올해의 ‘Answer Me My Love’ 전시에서는 꽃이 연상되는 기존 어서 대조된다. 제소를 칠하지 않은 캔버스 위에 지금 막 끝낸 것처럼 꽃의 느
의 붓터치가 메인 이미지인 사과를 위하여 뒤로 물러나 있는데, 이를 단순히 낌을 나이브하게 처리하여 생명력을 부여하고, 미라로 화석화된 사과는 임파
배경이라고 단언하기 어렵게 사과와 팽팽한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예전에 작 스토로 단숨에 그렸다. 꽃과 사과 모두 다른 방법으로 생명력을 부여받았다.”
가의 전시 평을 쓰면서 그림을 평면화시키는 ‘배경의 역습’이라고 언급한 바
있는데, 배경과 메인 이미지 간의 이러한 긴장감은 아직 몇몇 작품에 남아 있 작가의 말대로라면 꽃과 사과 모두 작가가 붙들고 놓지 않는 대상임은 분명
기도 하지만, 꽃은 배경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있다. ‘Flower 한데, 사과의 변성은 지금까지의 작품에서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지만 꽃의
Syndrome’의 소재이자 주제가 꽃이었다면, ‘Answer Me My Love’에서는 이 변성은 기록된 것이 없어서 결과적으로는 배경과 메인 이미지가 어떻게 구별
꽃을 뒤로한 사과로 전환되었다. 작가는 분명 ‘색을 화면에 어떻게 풀어가는 되며 현재 작가가 무엇에 더 집중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게 해준다. 이를 종합
가’에만 집중할 뿐 그 외 특정 대상에 집중하지 않는다고 했기 때문에 작가에 해보면 작가에게는 꽃과 사과의 고유한 특성보다 시간의 경과에 따른 형태와
게 중요한 색을 제외한 기타의 것, 즉, 배경과 메인 이미지의 역할 교체라든가 색채의 변성이 작업을 위한 동기부여이면서 동시에 시작점으로 작용한다고
메인 이미지가 꽃에서 사과로 교체되는 것에는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것으 할 수 있다. 대상의 변성과 상관없이 작가의 색채는 여전히 그리고 속절없이
로 이해되었다. 그러나 작가는 최근 세잔의 사과를 오마주하면서 특정 대상에 화려하고 또 향기로워서 감상자의 오감을 간지럽힌다.
의 무심(無心)에서 벗어나고 있으며, 특히 꽃보다는 사과가 작가의 표상(表象)
으로 조금씩 구체화되고 있다. 이제 작가에게 꽃과 사과는 화면에 색을 풀어가 작가는 전시하는 시기도 고려하여 작업한다고 한다. 여름으로 치닫는 환경
는 데 있어 기본을 이루는 요소이자 외면하기 어려운 유혹이다. 속에서 만개한 꽃을 빼곡히 중첩시켜 사과와 대비시킴으로써 색채를 통해
서 향기를 표현하였다고 하니 이 계절 꽃과 사과의 향기를 느끼고자 한다면
꽃과 사과에서 볼 수 있는 공통점이 무엇이기에 작가를 무심에서 벗어나게 만 5월 1일부터 29일까지 SPACE KYEOL에서 개최되는 작가의 전시를 보기를
들었는가. 그것은 바로 시간의 경과에 따른 독특한 변성으로, 시간이 지나 시 추천한다.
들어버린 꽃과 사과는 관상과 식용의 목적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에 더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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