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5 - 전시가이드 2021년 05월호 E-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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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랑 그라소, 인적자원 모의실험 영상 _Artificialis(극지 인공조형물)_ 스틸 컷, 2020년작 27’33’’ ⓒ로랑 그라소
가 돋보이는 작업으로 찬사를 받았다. 손바닥만 한 캔버스에 『일리아드와 오 코로나 팬데믹이 4차 유행으로 여전히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전남도립미
디세이』에 등장할 법한 정교한 회화를 그리는가 하면 빛과 전기에너지, 전파 술관≫의 개관특별기획전 『산을 등지고 물을 바라보다』개막 소식은 때마침
등 눈에 보이지 않는 요소들을 네온사인으로 시각화하고, 태양의 움직임을 데 개최된 <광주비엔날레>와 더불어 오랫동안 소외되어왔던 지방미술계에 모
이터로 만들어 건물을 에워싸는 작업을 동시다발적으로 진행하는 그는 자신 처럼 신선한 바람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비전과 방향성’을 보여주는 미래지
만의 방식과 철학으로 관객과의 소통을 꾀하고 있다. 그 작업의 정수 중 일부 향적 프로젝트로써 아름다운 자연에 대한 경외와 흐르는 물에 비치는 자신을
가 2016년 ≪갤러리 페로탕 서울≫ 개관 전을 통해 국내에 소개된바 있다. 그 되돌아보며 동참한 예술가들의 작품 세계를 재조명하고 공유하는 의미를 담
간의 개인전과 비교할 때 규모가 작았음에도 ‘개관 전’이라는 이슈에 따라 어 아낸다. 3개국 13명의 작가들의 작품을 선보이는 개관특별기획전에 또 다시
떤 작품을 전시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춘 점에 의미가 있었지 않았나 싶다. 로 초대받은 로랑 그라소의 작품에 주목하기 바란다. 왜냐하면 전통에 몰두하는
랑 그라소 자신 또한 ‘예술의 역할을 일상 속에 숨겨진 의미와 생각을 드러내 자체가 전통에 저항해서 새로운 미래를 창조한다는 이번 개관전시의 ‘뉴 트레
는 과정’이라고 밝힌 적 있다. 여기에 시각적인 충격과 시사적인 성향이 늘 따 디셔널’ 개념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전통과 현대, 그리고 미래를 관통하는 작
라다니는 것 같다. 작업하다 보면 정치적인 걸 의도할수록 오히려 그렇게 보 품으로 주목 받는 세계적인 작가인 로랑 그라소는 ≪전남도립미술관≫의 ‘개
이지 않는다는 걸 깨닫게 된다. 로랑 그라소는 정치적일 수 있는 요소들로 애 관특별전’을 위해 당대의 한국인의 정서에 비춰봐도 너무나 앞설 정도로 새로
매모호한 느낌을 주는 걸 즐긴다. 『엘리제』에서도 현실의 다양한 면면을 보여 웠던 경향의 선구자 윤두서의 작품 『말탄 사람』과 조선의 독자적인 진경산수
주고 싶고, 작품을 보는 동안 둥둥 떠다니는 느낌을 주고 싶었을 것이다. 이런 화의 화법을 완성한 겸재 정선의 『금강내산총도』를 오마주한 동시에 동·서양
기이함을 추구하는 건 결국 관객들이 그런 느낌을 받았으면 하기 때문이다. 을 초월한 코스모폴리탄적 시각과 개념으로 재해석한 신작 『Studies into the
또 다른 영상작업 『두 개의 태양(Soleil Double)』은 상징성이 강하다. 만에 하 Past』를 제작해 세계 미술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이
나라도 아침에 일어났는데, 창밖에 2개의 태양이 떠 있으면 이건 자연재해이 탈리아 고대 도시 폼페이와 전남 소도시 광양을 절묘하게 교차시킨 설치 영상
거나 재앙처럼 보일 거다. 로랑 그라소가 ‘태양과 빛’을 작품 속으로 끌어들이 『검은 태양』은 ‘장소 성’의 맥락으로 관람하면 문명의 덧없음과 자연의 유장함
는 건 바로 그런 충격적인 이미지를 차용하기 위해서다. 이런 상상 속의 재해 을 일러준다는 점에서 자못 흥미롭기 그지없다. 『미래가 된 역사』란 제목이 붙
를 통해 권력과 권한 등 보이지 않는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곤 한다. ≪갤러 은 로랑 그라소의 전시(8월8일까지)는 폼페이 연작을 포함해 모두 4개의 영
리 페로탱 서울≫ 전에서 소개된 <두 개의 태양>이라는 작품은 두 가지 매체 역으로 구성된다. 비좁은 땅에서도 서로 지역을 가르고 분열된 채 편협한 시
로 선보였는데 하나는 2014년에 작업한 영상작업이고, 다른 하나는 이 영상 각 속에 갇혀 지내던 우리 미술인들에게, 아무쪼록 동·서양의 공간을 뛰어넘
에서 영감을 받아 두 개의 태양을 본뜬 브론즈 조각이다. 영상작업은 역사의 어 우주로까지 확장된 로랑 그라소의 ‘새로운 정신’을 진솔하게 교감할 수 있
한 부분을 따오되 미래적인 방식으로 픽션처럼 만들었다. 이 방식은 로랑 그 는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뿐이다.
라소의 영상작업을 관통하는 컨셉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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