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3 - 2019년6월전시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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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재정선의 〈청하성읍도〉
글 : 김용권(겸재정선미술관 관장)
〈청하성읍도는 겸재 정선이 58세(1733년 8월 15일)때부터 60세(1735년 5월 16일)까지 2년간 청하현감을 지낼 때,
청하현의 동쪽 봉선정(월포리 가는 쪽에 위치)에서 바라본 경관을 그린 그림이다. 청하성을 화면의 중심에 두고
근경에는 갯벌과 솔밭을 그려 넣었으며, 원경에 호학산(呼鶴山), 천령산(天嶺山), 내연산(內延山)을
병풍처럼 펼쳐놓아 청하성읍을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했다.
보인다. 어렴풋이, 아니 아주 선명하고 분명하게 보인다. 우리는 겸재 정선 세라 생기발랄한 춤을 추며 바다가 있는 먼 곳으로 달려 나가고 있다. 이렇듯
(1676∼1759)의 〈청하성읍도(紙本水墨, 32.7×25.9cm)〉를 통해 260년 전 청 〈청하성읍도〉는 어느 것 하나 소외되지 않고 모든 것들이 전체적인 구도에 관
하성읍(지금은 포항시에 속함)의 온전한 모습을 볼 수 있다. 현재는 성터만 남 여하고 있다. 화면에서 느껴지는 바람마저도 원경의 솔숲을 휘돌아 먼 바다로
아 있지만, 〈청하성읍도〉에는 당시의 청하성읍이 어떠한 흐트러짐도 없이 우 나아가는 긴 여운을 남기고 있다. 또한 화면상단 화제 옆 ‘천금물전(千金勿傳)’
리 후손들을 위해 굳건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정말 귀하고 자랑스러우며 이라 찍혀진 백문방인조차도 〈청하성읍도〉가 자손대대로 소중하게 전해지기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르는 그림이다. 한지와 먹의 힘 그리고 겸 를 바라며 제 위치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재 정선의 붓질에 의한 리얼리티의 경관,〈청하성읍도〉는 우리 선조들의 숱
한 사연을 간직하고 있다. 〈청하성읍도〉를 통해 청하의 자연, 토양, 기후, 건 현재 청하성은 터만 남아 있다. 청하성이 있었던 자리에는 청하초등학교와 면
축, 이웃 등을 떠올릴 수 있다. 나아가 〈청하성읍도〉를 통해 인간들의 역사는 사무소가 들어서 있고, 성내 회화나무 중 한그루만 청하면사무소 마당에서 지
무엇이고 나는 누구이며 한국은 어떤 곳인가 등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 볼 수 금까지 생명력을 자랑하고 있다. 우리는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 하지만 우리
있다. 이렇게〈청하성읍도〉는 단지 무채색의 먹색 그림에 불과하지만 온갖 색 는 〈청하성읍도〉를 통해 과거의 청하성읍의 지역적, 역사적 사실에 깊게 빠
깔, 풍부한 자연과 활력을 시각적으로 느낄 수 있다. 마치 청하성읍의 현장에 져들 수 있으며 언제라도 옛 모습 그대로 되살릴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겸
서 있는 착각을 느끼게 할 정도로 경관의 운치, 그곳 갯벌의 냄새와 바람 소 재 정선이 뿜어내는 지적, 미적 향기를 통해 우리들의 지친 삶을 한껏 위로받
리마저 느낄 수 있다. 을 수도 있다.
〈청하성읍도는 겸재 정선이 58세(1733년 8월 15일)때부터 60세(1735년 5월 겸재 정선은 1735년 5월 16일 모친이 돌아가시게 되어 1년 9개월 만에 청하
16일)까지 2년간 청하현감을 지낼 때, 청하현의 동쪽 봉선정(월포리 가는 쪽 현감직을 사임하고 한양으로 올라왔다. 청하에서 겸재는〈청하성읍도〉외에도
에 위치)에서 바라본 경관을 그린 그림이다. 청하성을 화면의 중심에 두고 근 〈내연삼용추도〉2점과〈내연산폭포도〉를 그렸으며, 내연산 삼용추 폭포왼쪽
경에는 갯벌과 솔밭을 그려 넣었으며, 원경에 호학산(呼鶴山), 천령산(天嶺 바위에 ‘갑인추정선(甲寅秋鄭敾)’이라는 글자를 새겨 놓았다. 한편 겸재 정선
山), 내연산(內延山)을 병풍처럼 펼쳐놓아 청하성읍을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이 청하현감시절에 그렸던 그림들은 더욱 특별한 대접을 받고 있다. 그 이유
했다. 구체적으로 화면을 보면, 근경 우측의 솔숲이 청하성읍을 자랑하기위해 는 그 당시의 작품들이 바로 진경산수화풍을 가장 완벽하게 구사해 냈다는 평
우리를 먼저 반긴다. 중경 중앙의 솔숲은 ‘이곳은 신성한 곳이다’라고 힘주어 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진경산수화란 중국의 관념산수화풍에서
말하면서 청하성읍을 수호하고 있다. 이어 화면 중앙 분지에는 한길 넘는 성 벗어나 우리 산과 강을 직접 사생해, 주자학적 자연관과 풍류를 표현한 그림
벽이 청하성을 사방으로 가지런히 자기자리를 지키고 있다. 또한 성벽 곳곳에 을 말한다. 겸재 정선은 청하현감시절에 제작했던 작품들 대부분이, 실제 사
는 잎줄기가 긴 회화나무(길상목吉祥木)가 큰 인물이 나오길 소망하며 이리 물을 주관적인 시선과 독자적인 운필법으로 때론 간결하게 때론 묵직하게 펼
휘청 저리 휘청 바람을 타고 있다. 그 밖에 청하성 주변에는 갯벌이 넓게 펼쳐 쳐 놓았다. 당시의 작품에는 사물의 본질이 더욱 귀하게 드러나 있으며, 작품
져 있고, 고개와 언덕에는 팔작지붕과 맞배지붕을 한 집들이 여러 채 모여 서 에서 볼 수 있는 미감 역시 더욱 풍부하게 느껴질 수 있도록 하였다. 이후 겸
로 가까운 이웃임을 자랑하고 있다. 한편 청하성읍을 비추고 있는 햇살은 시각 재 정선의 진경산수화풍은 많은 문인 작가와 화원 그리고 일반 아마추어 작가
적으로 아주 환하게 보인다. 그 햇살이 가져온 따스한 온기와 맑은 공기는 저 들 사이에 널리 추종되었다.
멀리 보이는 원경 좌측의 산등성이 솔숲에까지 미치어, 그곳 소나무들도 뒤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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