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5 - 2019년6월전시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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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위한 Drawing-회상 280×280cm Mixed media 1997
통해 소외 등을 연상시키는 내용을 거느리는 소재로 다루어지고 있다. 감귤박 분에서 묘한 조형적인 구성을 발견한 것인데 여기서도 강한 오브제성이 감지
스는 사물이자 오브제다. 나무상자가 화면을 꽉 채우고 있기에 원근이 형성될 된다. 아울러 당시 1980년도의 암울한 정치적 상황에 대한 모종의 은유적인
수 없는 화면은 당연히 납작하고 평면적으로 다가온다. 더구나 사각형의 나무 메시지가 개입되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상자들이 반복해서 쌓여있기에 그 내부를 채우고 있는 작은 사각형 공간들이
반복해서 병렬하고 있고 이는 사각형의 화면 안에 무수한 사각형의 꼴을 만들 1982년도부터 일정 시간 지속된, 작가 특유의 소재가 된 침대(흰 천)와 그 위
어낸다. 이 사각형의 변주는 불가피하게 사각형의 화면 안에서 그림이 그려지 에 놓인 작고 감각적인 빨간 과일(체리), 그리고 구조물과 직선, 전경과 후경
고 있다는 사실을 지속적으로 환기시켜준다. 결국 당시 작업은 극사실주의의 의 분리, 광막한 공간감을 자아내는 배경, 전체적으로 푸른 색조가 자아내는
유행에 따른 작업의 일반적인 성향을 노정하면서도 모더니즘의 평면성과 단 몽환적인 차가운 분위기 등으로 이루어진 <상황-이미지>시리즈가 출현한다.
색조의 틀 안에서 이를 모두 아우르는 식으로 구현하고 있다. 이 초기작품은 누드가 부분적으로 등장하기도 하고 녹슨 철문이나 차가운 금속 침대 등이 반
임철순 회화의 근간이 되어 지속적으로 작동한다. 이처럼 그의 작업은 사실 복해 등장하면서 밀폐되고 암울한 공간을 암시한다. 사람이 부재한 침대 위에
적인 재현에 기반 한다. 정교한 재현에 힘입은 구상이 중심이다. 그리고 작품 마른 식물만이 덩그러니 놓여있는 상황 속에서 죽음이나 부재 등을 연상시키
의 주제는 일상에서, 현대사회에서 추출하고자 한다. 주제의식을 끌고 간다는 는 다소 무거운 주제의식이 무겁게 내려앉아 있다. 한편 1980년대 중반에 이
얘기다. 그러면서도 회화의 평면성을 유지한다. 동시에 이미지는 다분히 오브 르면 화면 바탕에 과감한 질감으로 이루어진 효과가 적극 등장한다. 에어브러
제의식 아래 차용된다. 그려진 이미지와 실제 사이의 놀이가 감행되고 화면 쉬로 세밀하게 조율된 화면에 이질적인 효과가 개입하고 대담한 붓질도 스치
은 그 이질적인 것들 사이의 긴장감 혹은 둘의 관계 사이에서 지탱되고 있다. 듯 지나간다. 이 텍스츄어에 대한 관심은 이후 더욱 가속화되어 1987년에 이
르면 생지 마대 화면 바탕으로 인해 강한 마대의 텍스츄어가 적극 노출된다.
이후 1980년 작업은 구체적인 사물에 보다 근접한 시선의 변화를 보여준다. 그리고 우드락을 화면에 부착하고 그 표면을 불로 태워 미묘한 색감이 감도
<상황-이미지>라는 제목의 그림들은 특정한 구조에 묶여 있는 천, 커튼의 일 는 질감효과를 극대화하는 동시에 바탕에서 일정한 두께를 지니고 튀어 올라
부를 보여준다. 기하학적으로 날카롭고 선명하게 구획된 화면은 밝고 어둠의 와 부조적 효과를 보여주는 그만의 연출이 시도된다. 일정한 두께를 지닌 층
극단적인 대조를 이룬다. 부드러운 천이 긴장감 있게 감겨있고 끈은 정교하게 이 비정형의 형태를 지니며 부착되어 있고 그 위에 그림이 그려졌고 이에 따
재현되어 있다. 반면 후경에 자리한 창문은 녹슨 철물을 재현한 것 같긴 한데 라 바탕 면과 그려진 화면을 동시에 인식시킨다. 실재와 그림이 동시에 공존
죽죽 흐르는 물감의 흐름으로 인해 추상적인 효과로 두드러진다. 부분적으로 하고 있고 화면 안에 또 다른 공간, 화면이 펼쳐진다. 그림 안에 그림이 담겨
드러나는 천의 주름과 끈 부분이 모종의 힘과 압력에 의해 연출된 상황을 암 있다. 이는 단일한 화면에 머물지 않고 화면을 다층적인 공간으로 확장시키며
시하는 것도 같다. 전체적으로 짙은 어둠과 녹슨 부위 등이 실내의 어느 한 부 평면 안에서 이를 부단히 교란하는 일련의 장치로 보인다. 그리고 이는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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