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0 - 전시가이드 2022년 10월 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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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정의 전시포커스

       《구용의 뉴트로New-tro, 무위이화無爲而話》

       시대를 앞서간 문학가, 丘庸 김영탁의 전통해석


       글 : 안현정 (미술평론가, 예술철학박사)





















       김구용의 문인적 정서를 보여주는 합작도





       “묵념은 등대의 목줄기를 쳐다보며 별들의 숨을 쉰다. 정관(靜觀)은 바다 안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개로 피화(皮化)한 가로등 불에서 소리를 발견한다.” - 김구용, 「말하는 풍경」
       (1959)                                         문학계에서 불려온 ‘난해성의 벽壁’은 시각화된 구조 안에서는 ‘초현실적 아방
                                                      가르드’와 매치되며, 이는 다양한 전통과 현대, 문학과 미술 사이를 융합적으
       성균관대박물관(관장 조환, 10.5~2023.3.31)은 혼란한 한국현대사회를 독특  로 파고드는 현시대의 다층적 콜라보를 함축한다. 전시를 통해 살펴본 구용 시
       한 색채로 구현한 문학가 구용 김영탁(1922~2001/성균관대 명예교수)의 삶   의 분석과 해석들이 미완의 비평과제를 남겼다면, 시각과 매치된 글씨와 그림
       과 詩 세계를 오늘의 관점에서 해석한 《구용의 New-tro, 무위이화》 전시를   은 오히려 ‘통시성과의 대화’를 시도한 ‘구용스타일’의 방향성을 보여주었다.
       개최한다. 구용에 대해 문학평론가 임우기(김구용 문학전집 편집을 담당)는 “     서구 상징주의와 초현실주의 시학, 한시의 전통와 선시 등을 종합적으로 연결
       무위이화(無爲而化)의 시 정신을 논하는데 빠뜨릴 수 없는 대시인”이라며, 동     시킨 부분은 문학을 벗어난 문화재 해석과 당대 화가들과의 교류 속에서 법
       양의 정신세계를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정서로 표현한 ‘산문시’의 대가로 평      고창신法古創新하되 근본을 꿰뚫는 ‘명쾌성’으로 이어진 것이다. 언어에 갇힌
       가했다.                                           문학가가 아니라, 예술을 사랑하는 한 인간으로서의 정취가 다양한 도판 위에
                                                      쓴 자기해석과 맞닿았을 때 폭발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다방과 산방 사이, 詩 세계를 탐닉하다.
                                                      구용의 글씨와 그림, 초현실적 종합주의
       구용의 본명은 영탁(永卓)이며 경상북도 상주 출신이다. 공자의 이름[孔丘]에
       서 ‘구(丘)’를, 중용에서 ‘용(庸)’을 따온 필명인 ‘구용(丘庸)’으로 널리 알려졌  구용의 무위이화는 ‘통하여 이어지는 해석-전통傳統의 현재성’을 보여준다.
       다. 그는 1950년대 전후 시단을 대표하는 시인이었고, 한학(漢學)에 대한 깊   이성자의 1974년 현대화랑 개인전 도록 속에는 당대의 여류 추상 그림을 접한
       은 소양을 바탕으로 한문 고전을 생동하는 우리말로 옮긴 번역가였으며, 추       문학가의 자기 해석이 간결한 문체와 글씨 속에서 재발굴된다. 표준어를 넘어
       사를 비롯한 전근대 한국 예술가를 깊이 숭앙했던 서예가이자, 성균관대학교       선 언어와 기호를 가로지른 섬세한 비평, 아마도 발굴되지 않은 수 많은 화가
       교수로서 후학을 양성한 교육자였다. 구용의 삶에서 큰 영향을 미친 사건은       들과의 교류 속에 ‘구용의 新비평 스타일’이 담겨있을 것이다. 날 서지 않은 즉
       한국전쟁이었다. 전쟁의 참상 속에서 그는 자신의 생존과 문인으로서의 정체       흥적으로 써내려간 둥그러진 캘리그라피와 같은 글씨 형식은 구전을 자연적
       성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뇌했다. 이에 행복했던 어린 시절을 환기하고 진정       으로 시각화한 詩형식을 보여준다. 김구용이 「風味」(1970)에서 언급한 “대답
       한 자신을 찾기 위해 수양했으며 동양의 고전에 흠뻑 빠져있던 동학사 사찰       은 반문하고 물음은 공간이니 말씀은 썩지 않는다.”는 구절은 정확한 인식이
       의 산방(山房)과, 서구 최신의 문예 기조를 습득하며 다양한 예술가들과 교유     불가능한 예술해석의 다양한 취향, 이른바 보편구조를 벗어난 21세기라는 탈
       하였던 부산의 다방(茶房)을 전전했다. 이렇듯 성과 속의 공간을 넘나드는 태     구조적 개별양식을 예견하고 있다. 그가 읽어내려간 언어의 불협화음들은 낯
       도는 이후 삶에서도 이어졌다. 또한 전통 시기 옛 문인들을 애호하며 그 정신     설게 공존하는 ‘전통을 향한 오늘의 인식’을 보여준다. 이성자의 1972년작 <5
       을 힘든 정신 속에서 재창조하려는 의지도 새롭게 다졌다. 본 전시의 초반파      월의 도시, 72-no.3>의 원형구조를 “푸른 거울”로 해석한 것이나, 1966년작 <
       트에서는 천진난만한 아이처럼 진정한 자신을 찾기 위해 노력하였던 산방의        음악이 필어난 잠자리>를 “부풀어 오른 행복, 별은 꽃 피리라”(1974)와 같은
       구용, 다양한 문인들과 교유하며 자신의 예술관을 다듬어간 다방의 구용, 추      리드미컬한 동시童詩와 같이 표현한 것은 그가 기존에 보여준 난해한 시형식
       사 김정희로 대표되는 옛 문인들의 정신을 되새기고 새롭게 창조해간 구용의       과는 또 다른 순수성의 영역을 보여준다. 실제로 구용은 이성자 외에도 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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