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80 - 종사총람 수정증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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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錫),  여섯째  아들은  강릉군(江陵君)  건(鍵),  일곱째  아들  언양군(彦陽君)  선(鐥)

                      이니  선의  후손은  언양김씨가  되고  여덟째  아들  휘(諱)  추(錘)이니  삼척군(三陟
                      君)에  봉해졌고  그  아들  휘  위옹(渭翁)이  삼척군왕(三陟郡王)에  봉해져  그  자손
                      이 삼척김씨가 되었다.

                     고려 때에는 현달한 자가 제법 많았는데 우리 조선에 이르러서 미약해져 떨치지
                      못해  높은  벼슬아치가  경주나  나주김씨  등  여러  종족에  미치지  못하였다.  보첩

                      이 있으나 인쇄를 하지 않았고 또 그 선대에 많이 민멸(泯滅)되어 장험하기에 부
                      족해 내가 보고는 슬픈 마음이 생겼다. 신라의 삼성(三姓)이 서로 왕위를 계승해
                      간 것이 992년이었는데 그중 김씨 성이 왕이 된 자가 38명이었으니 생각하건대
                      우리나라 백성들에게 은택을 입힌 것이  매우 깊었던  것이다. 그래서  지금 그 자

                      손들이  번성하여  유명한  분들이  해동  성씨  가운데  김씨가  가장  많아  여기에서
                      징험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비유하자면 큰 나무가 뿌리에서 기운을 내면 가지와 줄기의 번성함이 각
                      기 다른 것과 같아서 그런 것인가? 생기가 줄기에 전해지면 시들었던 가지 역시
                      소생하는  것이다.  내가  삼척김씨들에게  거듭  느낀  바는  모두  신명(神明)의  후손

                      으로  유독  쇠퇴한 것이  지금  거의  6,  7백년인데도  세대의  차례를  잃지  않고  이
                      어져와  이처럼  찬란한  것이다.  이는  반드시  자손들이  어질어서  효제(孝悌)하는
                      마음이 지금까지 게으르지 않아서 그런 것이다.

                     이제  또  보첩을  이처럼  중수(重修)하여  인쇄하려  하니  바로  후세  사람들에게  효
                      제의  도리를  흥기(興起)시켜  더욱  힘써  게으르지  않게  하니  아,  효제의  도가  흥

                      하고서  창성하지  않은  집안이  없다는  말은  듣지  못하였다.  시들었던  가지가  변
                      하여 소생하게 되는 것을 이 보첩에서 기다려도 될 것이다.

                     내가 삼척군(三陟君)의 후손 구중(九重)과 친한데 그가 소매 속에다 보첩을 넣어가
                      지고 와서 서문을 간절히 청하므로 대략 그 세계를 기술하여 이상과 같이 쓴다.





                                                          을묘년 국추(菊秋) 상완(上浣)에 홍문관교리(弘文館校理)
                                                                   서원(西原) 한용탁(韓用鐸)은 삼가 서(序)함.


                                                                                <己丑大同譜 一卷82~84>


















              180    三陟金氏  宗史  總覽  修訂增補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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