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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술보 서문(壬戌譜 序文)
족보란 씨족의 세대(世代)를 적은 역사이다. 초목이 비록 수만 가지로 번성하더
라도 그 뿌리는 하나로 같고 시냇물이 여러 갈래로 나뉘어 흐르더라도 그 근원
은 하나요 자손이 비록 백세 동안 번창하더라도 그 근본은 조상에게 있으니 이
는 천지의 생물(生物)이 만 가지 종류라도 각기 근원이 있어 한 가지 기운에서
말미암은 것과 같은 원리이다.
세대가 이처럼 오래 되고 후손이 점차 멀어지게 되면 대수(代數)를 알지 못해 친
애하는 도리가 점차 멀어져 소목(昭穆:조상을 사당에 모시는 차례란 뜻으로 대수
(代數)를 뜻함)의 차례를 잃게 되고 항렬(行列)이 문란하게 되므로 마치 일가를
길 가는 모른 사람처럼 여기게 된다. 그렇게 되면 사람으로서 가장 걱정해야 할
일인지라 자손 된 자들이 자기 조상의 휘(諱)를 곧바로 쓰고 그 관작을 기록하고
묘역(墓域)을 자세히 기록하며 또 인척을 기록하고 자손의 광협(廣狹)과 명덕(名
德)의 드러나고 사라짐을 세계(世系)에 다 기록하고 거주지와 함께 써서 인애(仁
愛)를 돈독히 하는 뜻을 두었으니 족보를 만드는 것이 어찌 중대하지 않은가?
삼척김씨의 족보는 정조(正祖) 을묘년(乙卯年 1795년)에 처음 간행되어 단기(檀
紀) 四二九三년 경자년(서기 1960년)까지 모두 여섯 번 편찬하여 지금 임술년까
지 일곱 차례 간행되었으니 경자년은 지금으로부터 거의 23년이 되었다. 대저
三十년마다 한번 보첩을 만드는 것은 사대부 집안에서 조상을 존경하고 친족을
돈독히 하는 방도요 세계를 밝히고 종족을 모으는 뜻인 것이다. 그러나 지금 국
토가 둘로 나뉘어져 남북으로 분열되고 흩어졌으니 북쪽에 있는 자가 얼마나 되
는지 모르며 누구누구인가를 모르니 통합하여 족보를 만드는 것이 불가하게 되
었다. 이에 김규동(金奎東) 김우영(金宇禜)씨가 여러 종인들과 의논하여 족보 편
찬을 앞서서 주장했다. 이에 수단(收單)하여 인쇄에 부치니 이는 거족적(擧族的)
인 쾌사로 족히 종족을 돈목(敦睦)하게 하고 효제(孝悌)하는 마음이 생기게 하고
세상을 교화(敎化)하는 방도가 사라지지 않게 해야 하는 후손된 자의 당연한 도
리이다. 이제 나에게 서문을 청하는데 늙고 병들었다 하여 사양하지 못하고 이
상과 같이 쓴다.
임술년(壬戌年) 늦봄에 성균관장(成均館長) 이재서(李載瑞) 서함.
<己丑大同譜一卷55~57>
196 三陟金氏 宗史 總覽 修訂增補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