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91 - 종사총람 수정증보판
P. 191
아, 우리 보첩은 만든 지가 오래되었다. 처음 정조(正祖) 을묘년에 시작되어 상
황(上皇) 갑진년에 이르러 전후 증수(增修)한 것이 모두 네 번이니 파보가 한
번, 대동보가 세 번이다. 지금부터 갑진년이 겨우 十七년이어서 선유(先儒)들의
일세(一世)만에 한다는 규정에 의하면 보첩을 만들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생각
해보면 세도(世道)가 날로 낮아지고 풍속이 날마다 투박해져서 전에 소홀했던 자
는 더욱 소홀하게 되고 먼 자는 더욱 멀어져 종족을 모아 한 지면(紙面)에 합쳐
그 친함을 알게 한다면 비록 중첩되더라도 나쁠 게 무엇인가.
이에 여러 종인들과 협의하고 힘을 합쳐 선인들의 발자취를 따르고 그 유적(遺
蹟)을 드러내기로 해 각기 돈과 곡식을 차등 있게 내어 역사를 시작해 몇 년 만
에 활자로 인쇄를 하게 되었다. 모든 방주(傍註)와 사행(事行), 생졸(生卒)은 모
두 구보의 예에 의하였으니 이웃 지역에 떨어져 사는 자 들은 누락되는 탄식을
면할 수 있으나 유독 강서(江西) 관북(關北) 여러 파는 멀어서 미치지 못했으니
이것이 한스럽다.
보첩이 완성된 후 여러 종인들이 내가 이 역사에 참여하여 그 전말(顚末)을 대강
안다고 하여 그 일을 서술하라고 하였다. 우리 할아버지가 신라와 고려를 거친
사적의 대개는 이미 전 사람들이 기술에 다 갖추어져 있으니 내가 무슨 말을 덧
붙이겠는가. 다만 한마디 하겠으니 보첩을 귀하게 여기는 것은 내 몸이 있게 된
유래를 알고자 하는 것이요 내 몸이 있게 된 유래를 알고 나면 우리 선조가 있
음을 알게 된다. 만약 그 소원한 종족도 우리 선조께서 보면 같은 핏줄이라는
사실을 모르면 이는 근원이 없는 물이요 뿌리가 없는 나무와 같으니 어디에 선
조를 높이고 종족을 공경하는 도리가 있다고 하겠는가? 무릇 이 보첩에 들어 있
는 자들은 풍속을 후히 하고 충의(忠義)를 세워 참으로 정자(程子)와 장자(張子)
의 가르침대로 한다면 보첩이 헛되지 않아 효제(孝悌)하는 마음이 뭉클하게 저절
로 생겨날 것이다. 원하건대 후세 사람들은 이를 힘써야 할 것이다.
경신년 맹하 상완(上浣)에 후손 낙영(洛榮)은 삼가 씀.
<己丑大同譜一卷63~69>
제2편 삼척군기(三陟君記) 19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