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87 - 종사총람 수정증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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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족(氏族)에게 족보가 있는 것은 나라의 사기(史記)를 모방한 것으로 세(世)는
본래 역대(歷代)의 연표(年表)와 같아 명족(名族) 대성(大姓)들이 왕후(王侯)의 대
수를 기록해 널리 알게 하고 그 문헌을 참고하였던 것으로 그 규모가 정해져 제
법 자세하다. 위로 먼 선조도 이런 규정이 있어서 잊혀지지 않고 아래로 종지
(宗支)가 넓게 되어도 이런 규정이 있어서 빠뜨리지 않으니 깊이 옛 성인들의 추
원감모(追遠感慕)하는 효성과 돈목(敦睦)하는 명덕(明德)을 깊이 얻게 되어 보첩
이 이래서 아름답고 세상 교하에 크게 보탬이 되는 것이다. 보첩이 성하게 된
것은 근세에 이르러 극도에 이르러 폐단이 없지 않다. 모든 득성(得姓)한 자들마
다 보첩이 있게 마련이어서 집안마다 명덕(明德)의 선조가 있고 또 훌륭한 집안
자손이 아닌 자가 없다. 그래서 집집마다 스스로 범란(范欒)처럼 쇠퇴 하지 않고
사람들마다 미소(眉蘇)처럼 돈목(敦睦)한다고 하는데 그 실제를 따져보면 너무
과장되어 더러는 강(江)과 하(河)의 발원지가 다름을 구별하지 못하게 되고 너무
광범위하게 널리 모아 나열 하고 보면 매양 옥돌과 잡석이 뒤섞이게 되어 보첩
이 진미(盡美)하지 못하게 된다. 심한 자는 만장(滿璋)의 적(籍)을 무추(武秋)라
하고 곽숭도(郭崇鞱)를 곽분양(郭汾陽)의 후손이라고 써서 보첩을 읽을 수가 없
으니 이것이 대아(大雅)들이 부끄럽게 생각하는 바요 유식한 자들이 탄식해 온
지 오래이다.
내가 삼척김씨의 보첩을 보건대 부박(浮薄)한 습성을 끊고 과장하는 폐단을 제거
하여 먼 조상을 바르게 고증하여 믿을 수가 있고 많은 지파를 정리하면서 서법
(書法)이 근엄하였으니 이는 이른바 세운 규정이 아주 자세하기 때문이다. 또 가
세(家世)를 보건대 더러는 과거급제를 못해 벼슬을 하지 못했지만 문학(文學)과
행실을 쌓아서 가성(家聲)을 실추시키지 않고 수천 년을 지켜 온 예전의 화려한
집안이다. 그래서 이 보첩에 유독 옛사람의 아름다운 점을 얻어 읽어도 싫증이
나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기꺼이 이처럼 서문을 쓰는 것이다. 이번 보첩 간행
을 주관하고 나에게 글을 청한 자는 군왕(郡王)의 후손 병정(秉鼎)과 주욱(周昱)
등 여러분이니 이분들은 아까 말한 대대로 문학을 닦아 가성(家聲)을 보존해 온
분들이다.
갑진년 계춘(季春)에 대광보국숭록대부(대광보國崇祿大夫)
의정부원임규장각학사훈일등(議政府原任奎章閣學士勳一等) 파평(坡平) 윤용선(尹容善) 씀.
<己丑大同譜一卷70~74>
제2편 삼척군기(三陟君記) 18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