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89 - 종사총람 수정증보판
P. 189

顚末이라하여請叙其事어널余曰吾祖之自羅歷麗史蹟之大槩는  巳悉於前人之所述하니

                           何敢贅爲哉아抑有一説焉하니噫라譜之所貴者는以知其有吾身也라知其有吾身者는以知
                           其有吾先也라若不知其疎遠之族도自吾先으로視之同一血脉則是는無源之水요無根之木
                           也라為在其尊祖敬宗之道哉아凡入斯譜者는厚風俗立忠義하여苟如程張夫子之訓則譜不
                           爲虛設而亦爲孝悌之心이油然自生也라惟願後來之人은其有以勉於此矣否아

                          歲上章涒灘孟夏上浣에後孫洛滎온謹畫하노라





                           신유보  서문(辛酉譜  序文)


                           한  기운이  두루  흘러  삼재(三才:天  地  人)가  있게  되는데  사람이  삼재에  하나로
                            들어간  것은  사람과  물(物)이  함께  생기지만  구분이  있어서이다.  어미만  알고  아
                            비를 모르는 것은 짐승이요 아비만 알고 할아비는 모르는 것은 날짐승이요 그 할

                            아비를  알고  그  아비를  아는  것은  오직  사람뿐인데  할아버지를  존경하고  종족을
                            공경하여 종족을 모으는 의리가 있는 것이 이 족보를 만들게 된 동기이다. 우리나
                            라에서  족보를  만든  것은  태종조(太宗朝)  병오에『청장철편보』(靑裝鐵編譜)가  시

                            초이며  우리  집안에서는  병자년  청장보가  시보(始譜)이며  안동(安東)의  파보는  을
                            묘년에 이루어지고 기유년, 갑술년, 갑진년 세 차례의 대동보는 본향(本鄕)에서 완
                            성했으니 조상을 높이고 종족을 공경하는 정성이 지극하다고 하겠다.

                           우리 삼척김씨는 대보공(大輔公)을 비조(鼻祖)로 삼아 삼척군 추(三陟君 錘)에 이
                            르러  삼척을  관향으로  삼았는데  一천여  년에  그  인구가  많이  불어났으나  우리

                            시조께서  보시기에는  다  같은  한  집안의  친한  자손이다.  갑진보는  삼년에  걸쳐
                            겨우 편찬했는데 마땅히 들어가야 할 자가 들어가지 않은 자가 많고, 세수(世數)
                            역시  一세(世)인  三十년이  되지  못했으나  세상의  변화가  예전과  아주  달라졌고
                            선배들이  이미  돌아가시고  후생들이  번성해져  한결같이  논할  수만은  없어  만약
                            몇  년  동안만  이대로  더  경과하면  보첩에  들어가야  할  자가  들지  못한  자가  과

                            반이나 될 것이요 세상의 앞날 역시 미리 알 수가 없는 것이다. 또 현대에는 문
                            헌(文獻)이  많아져서  역사책을  상고해서  구보(舊譜)의  틀린  부분을  교정하고  전
                            번 기록에서 빠진 자를 바로 잡으면 전인들의 기술이 비록 잘 갖추어 졌으나 오

                            늘 날 보충해야 할 부분이 없지 않다.
                           슬프게도 우리 삼척김씨는 청한(淸寒)한 종족으로 이미 여러 세대를 거치면서 각

                            지에 흩어져 살아 여러 선대 묘소에 서리가 내리는 날에 몇 대 할아버지와 할머
                            니의  묘역인지  구분하지  못하고  심지어는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휘(諱)와  자(字)
                            를  자세히  알지  못해  같은  골육(骨肉)에서  갈라져  나와  형기(形氣)가  이어진  일

                            가가  도리어  길가는  모르는  사람처럼  되고  말았다.  앞서의  군자(君子)들이  이를
                            민망하게  여겨  이런  보규(譜規)를  설정했던  것이다.  보규가  사라지면  조상과  족



                                                                                  제2편  삼척군기(三陟君記)  189
   184   185   186   187   188   189   190   191   192   193   1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