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⑥ 후갑술보(後甲戌譜:西記 1934年)
甲戌譜序
古者太史掌譜事하야以辨氏族序昭穆故로無私譜焉이라漢唐以降에其法이廢하여始家自
爲譜而又無可徵이나惟宋蘇氏之譜始有傳者而上以至高祖而止하고泊我東하여譜制始備
而歷世稍久則派分多岐하고後承稍繁則散居無恒聚而同之己甚難矣而又或濫或冒或漏或
訛하여難保其必無此弊矣라余觀大姓望族之爲譜者多而皆以難乎精且詳하여有積費歳年
而不能就者라惟三 陟金氏之譜는不然하니金氏自新羅大輔로至高麗悉直郡王은王室也
니其系之徵이有國史矣라悉直은即今之三陟而王之子孫이仍居焉하여死徙不出井하니聚
而同之不少難矣而又皆孝友敦睦으로以爲家規宗法하여無濫冒漏訛之弊而又以三十年一
修譜로爲宗約하니或有一二散居者나無疎遠難徵之慮故로世系綿長과姓族之繁衍이莫金
氏若者而譜籍之精且詳이亦莫有與金氏埓者하니宜修譜家之取法焉而如欲其取法則世居
一鄉하여孝友敦睦이亦必如金氏라야乃可耳라金氏之前譜在甲辰하고今値甲戌而又修之
할새譜成에炯轍胄榮二君이來索弁卷之言曰此一門之意也라하야널余不敢以老癃으로
辭하노라
歳甲戌季春에 經學院大提學東萊鄭萬朝는 序하노라
후갑술보 서문(後甲戌譜 序文)
옛날에는 태사(太史)가 보첩의 일을 관장하여 씨족의 차례와 소목(昭穆)을 밝혔
기 때문에 개인 집안의 보첩이 없었는데 한(漢)나라와 당(唐)나라 이후에 그 법
이 폐지되어 비로소 집안에서 보첩을 만들었으나 징험할 바가 없고 오직 송(宋)
나라 소씨(蘇氏)의 족보가 처음으로 전해오는데 위로 고조(高祖)에서 그친다. 우
리나라에서 보첩의 제도가 비로소 갖추어졌는데 세대가 조금 오래 지나면 여러
갈래로 분파(分派)되고 후손이 번성하면 여기저기 흩어져 살아 항상 모아서 함께
보첩을 만들기가 매우 어렵고 또 더러는 너무 지나치거나 함부로 하고, 혹은 누
락되거나 틀리는 폐단이 없다고 보장하기 어렵다.
지금 큰 성씨와 망족(望族)들이 보첩을 만드는 자가 많은데 모두 정밀하고 자상
하게 만들기가 어려워 여러 해 동안에도 완성하지 못하는데 오직 삼척김씨(三陟
金氏)의 족보는 그렇지 않다. 김씨는 신라의 대보(大輔)로부터 고려 실직군왕(悉
直郡王)에 이르기까지는 왕실(王室)이어서 그 세계(世系)가 국사(國史)에 실려 있
다. 실직은 지금의 삼척인데 왕의 자손들이 그대로 눌러 살면서 죽어서도 동네
를 벗어나지 않고 함께 모여 살았다. 이렇게 하기는 적지 않게 어려운 일이며
또 모두 효도와 우애를 하고 일가들과 돈독하게 지내는 것을 가규(家規) 종법(宗
法)으로 삼아 지나치고 함부로 하거나 누락되고 틀리는 폐단이 없었다. 또 30년
마다 한번 씩 보첩을 편찬하는 것이 종약(宗約)이어서 한두 흩어져 사는 사람들
도 멀어서 수단을 받지 못할 염려가 없기 때문에 세계가 멀고 성씨의 번성함이
192 三陟金氏 宗史 總覽 修訂增補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