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4 - 삼척김씨대종회보2005창간호_Neat
P. 94

G 김응위(金應 i胃)
                  동해시 송정리에서 살았다. 어머니 병환에 이슬을 맞으며 밤 세워 기도하고, 아버지
                병환 때에는 학이 감동하여 신에게 고하여 병을 고친 기적이 있었다고 한다. 심동근(沈
                W) 부사가 글을 지어 찬양하기를 “서진(EW)시대 효자 왕상(王洋)이 얼음 위에 누워
                얼음을 녹인 다음 잉어 두 마리를 구하여 제모에게 효행한 것과 또 오(吳)나라의 효자
                맹종(孟宗)이 눈속에서 죽순을 구하여 어머니를 공양한 효행과도 짝지을 수 있다.” 고
                했다.고종 19년(1882)에 효자 정려가 내리고 성암(=) 박도향이 글을 지었다.

              □  김요령(金?톻齡)

                  시중(侍中) 인궤(仁軸)의 후손으로 근덕면 교가리에서 살았다. 아버지의 병환으로 3년
                동안 온갖 힘을 다하여 약을 짓고 간호하였으나 낫지 않고 임종에 다다르게 되니 손가
                락을 잘라 피를 넣어드려 3일을 더 연명하다 돌아가시자 3년 시묘살이를 했다. 효자
                정려를 받았으며 정조(正祖) 때 수직(壽職)으로 통정대부의 벼슬을 받았다.


              □  김귀하(金a河)
                  동산리(東山里)에서 살았으며 벼슬은 감찰이다. 어머니가 악성 종기로 고생하자 입으
                로 고름을 빨아내어 병을 고쳤다. 아버지 병환 때도 정성을 다하여 하늘에 빌고 간호하
                였으나 돌아가시자 3년간 소식(素食)하며 초하루와 보름에 빠짐없이 성묘하였다. 효자
                표창을 받았다.


              □  김형귀(金«貴)
                  삼척시 도계읍 소도리에서 살았다. 어머니가 병으로 누워 앓자 왼쪽 손가락을 잘라
                입에 피를 넣어드렸으나 효과가 없어 다시 다음 손가락을 잘라 피를 넣어드리니 차겁
                던 가슴이 따뜻해지며 회생하였다. 어버이 상을 당하여 3년동안 새벽 닭소리를 듣고
                일어나 참배하였다. 참판 권익상(權益相)이 비문을 지었다.
                                                                                 (이상 三|涉市誌 참고)

              □ 김태연(金泰溫)
                  삼척시 노곡면 상월산리에서 살았다. 원종공신(原從功臣) 울진 현령 윤돈(W0의 10세
                손으로 벼슬은 참봉이었다. 어려서부터 성품이 선량해 병든 아버지를 지극정성으로 간
                호하였으나 돌아가시자 애통함을 못 이겨 몇 번이나 기절했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면
                서 아버지에게 못한 효도를 어머니에게 다 바쳤다. 집안이 가난했으나 철따라 음식과
                옷을 해드렸으며 형제간이나 부부간, 친구간에도 도리를 다해 사방에 칭송이 자자했다.

                광무 4년에 성균관 본소에서 완의문(完議文)을 작성, 그 효행을 크게 칭송했다.
                                                                (삼척시 노곡면 金在國 지역 종친회장 제공)


                                                      96
   89   90   91   92   93   94   95   96   97   98   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