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3 - 삼척김씨대종회보2005창간호_Ne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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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을 당하여 관을 옮기려할 때 관 밖으로 시체 썩은 물이 흘러나오자 관을 혀로 핥고
              그 물을 빨아 먹으며 영령이 바로 되기를 호소하며 울었더니 물이 그쳤다. 고종 27년
              (1890) 가을에 효자의 정려를 내렸으며 군수 이구영(李榮)이 글을 지었다.


            □  김진정(金振W
                삼척시 근덕면 옥원리에서 살았다. 아버지가 깊은 병에 걸려 5개월간 간호하였으나
              낫지 않아 아버지 대신 자기가 앓겠다고 하늘에 빌었더니 꿈속에서 신령이 나타나 약
              을 가르쳐 주어 병을 고쳤으나 몇 달이 안되어 돌아가셨다. 장사를 치르고 나서 식음을
              전폐하고 사경에 이르자 고종 29년(1892) 여름에 동생과 함께 효자의 정려를 내렸으
              며 이조판서 정기회(W會)가 글을 지었다.


            D 김진종(金振鍾)
                김진성의 동생으로 부친상을 당하여 3년 동안 시묘살이를 하면서 한 번도 집에 돌아
              가지 않았다. 순조왕이 승하하자 단을 모아 멀리 바라보면서 3년간 곡을 하였다. 고종
              29년에 정려문이 내려지고 대사성(大司成) 정구택(鄭九澤)이 글을 지었다.

            □  김종섭(金宗變)                                                       •
                이천리(理川里)에서 살았으며 아버지의 유훈에 따라 가난한 살림에도 지극 정성으로
              할아버지를 섬기며 보살폈다. 할아버지가 죽자 노송을 붙잡고 얼마나 물었는지 그 나무

              가 말라 죽었다. 고종 11년(1874)에 효자의 정려가 내려지고 동몽교관 벼슬이 증정되
              었으며 송고(松<)김학묵(金學默)이 글을 지었다.


            □  김덕용(金德龍)
                동해시 천곡리에서 살았으며 어느 해 겨울, 큰 흉년을 만나 강릉까지 걸어가 고기를 주
              고 식량을 구해 집에 와 보니 부모는 며칠동안 굶고 있었다. 104세까지 사셨던 아버지 장
              사 때 눈비가 섞여 내려 관을 묻을 구덩이를 팔 수 없어 하늘에 빌었더니 날씨가 개이고
              해가 나서 편안히 안장할 수 있었다. 후에 숭정대부(崇政^)의 벼슬을 받았다.


            □  김성성(金聖聲)
                삼척시 미로면에 살았으며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를 정성껏 모셨다. 병든 어머
              니가 산 짐승고기를 원하자 눈 속을 헤치고 멧돼지를 잡아 드렸더니 병이 나았다. 어머
              니 돌아가신 후 3년 시묘살이를 마치고 초하루와 보름마다 성묘할 적에 항상 호랑이가
              묘 옆에서 같이 지켜주었으며 집까지 따라 왔다고 한다. 광무 6년(1902)에 효자의 정
              려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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