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1 - 삼척김씨대종회보2005창간호_Ne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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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慈善, 忠義, 孝行이 빛나는 선조들





            □  김예순(金禮順)
                1584 (선조 17년) 박지생과 (朴支生)과 같이 홍월평(紅月耳)의 관개수로를 개설하여 개
              간하였다. 선조에 의해 승지(承旨)의 벼슬에 중직되었고 농민들이 비각을 세웠다.


            □  김순필(金淳弼)

            김인궤(金仁M)의 후손. 벼슬길을 멀리하고 농사에 독실하여 황폐하고 개간하기 어려운
            들판을 찾아 경인(=)년 봄에 동지들과 도수로를 만들어 논을 크게 개간했다.후에 주민
            들이 송덕비를 세웠다.



            □ 김광유(金光 W
                호는 돈재(W),공민왕 때 중랑장으로서
              홍건적을 평정한 공로로 보리공신(M功臣)
              의 록을 받았고 전쟁터에서 장수가 되어 크
              게 승리를 거두자 왕은 그의 벼슬을 높이고
              아껴주었다. 우왕(稱王)이 등극하자 불사이
              군(不事三君)을 내세워 벼슬을 그만두고 낙향  r녑#il—證부!!하

              했다.                                              김광유 묘/ 삼척시 근덕면 소재


            □  김자의(金自義)
                호는 동명(東漢). 단계(丹淡) 하위지(河編地)의 질서(姓婚).판결사(判決事) 벼슬을 지냈다.
              단종이 양위하자 그날로 벼슬을 그만두고 가족들과 의주(宣主)로 은퇴했다.


            □  김 겸(金 B)
                호는 효가(孝街). 참봉 방윤(邦潤)의 아들. 외지흥리(外智興里)에서 살았다. 벼슬은 영흥
              교수(永興W). 모친이 나쁜 병을 얻어 낫지않자 손가락을 잘라 태워 그 재로 모친의
              병을 고쳤다. 부친상을 당하여 묘 아래서 시묘살이를 하는데 항상 묘에 올라가 슬피 곡
              을하자 주변의 벌레들도 같이 울었다고 한다. 선조 11년(1578)에 정여문을 세우고 부
              사 허목(許穆)이 제사지냈다. 고종 9년(1905) 가을에 정여문이 떠내려가서 1912년에
              동회리(Wffi)에 다시 세우고 인촌(忍村) 김흥지(金興志)가 글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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