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9 - 삼척김씨대종회보2005창간호_Ne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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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마지막 왕인 경순왕은 927년 후백제의 침공으로 경애왕이 세상을 떠난 후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다. 그러나 통일신라 말기의 혼란 속에서 재위 9년 만에 신라를 고려에
            넘겨 줌으로써 신라는 56대 922년 만에 막을 내리게 된다.
              경순왕릉은 신라왕릉 중 경주지역을 벗어나 있는 유일한 왕릉으로 고려와 조선을 거치

            면서 오랫동안 잊혀졌다가 조선 영조 때에 비로서 릉을 찾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나서
            삼척김씨대종회가 공식적으로 조상의 뿌리를 싸} 참배 길에 나선 것 또한 오랜 세월이
            지난 후의 일이었다.
              대종회장과 임원 일행들이 출발하기 전 날까지 억센 비바람을 몰아치며 초가을 하늘을

            온통 흔들어대던 날씨가 출발하던날 이른 아침은 길바닥에 누운 무수한 낙엽들이 소슬한
            가을 바람을 타고 밤새 젖은 몸들을 말리고 있었다.
              겨우 한 치 앞만 보이던 대관령 안개를 뚫고 근 다섯시간을 달려 경기도 파주를 지날

            무렵에는 9월의 파란 하늘이 눈이 부시도록 햇볕을 쏟아낸다. 자유로(自由路)를 따라 길게
            녹쓴 철조망 넘어 비무장 지대를 흐르는 임진강 변을 끼고 왕릉이 있는 연천군으로 가는

            길목에 파평면을 지난다. 삼한(三韓)의 가장 대표적인 문벌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파평윤
           씨의 본거지 치고는 생각보다 초라하고 한적한 시골 풍경이 오히려 세월의 덧없음을 느
            끼게 한다.
              연천군 장남면 고랑포리에 있는 왕릉은 남방 한계선에 접해 있어 출입이 제한되고 있

            었다.빽빽하게 둘러싼 무성한 참나무 숲 가운데 천년이 넘도록 그렇게 누워 있는 경순왕
           릉은 경주에서 보던 덩치 큰 왕릉이 아니다. 그러나 까마득한 후손들이 오히려 더 친근감
           을 느끼게 한 것은 우리들 할아버지 묘처럼 낮으막하게 봉분을 이고 있는 그 수수함에서
            일 것이다. 릉 앞에 세워진 작은 묘비에 자국난 총탄 혼적들이 후손의 가슴을 아프게 한

           다. 선왕(先王)들의 곁을 떠나 왜 이곳에 혼자 외롭게 누워 계실까.
             수많은 도성(都城)들이 고려에 투항하자 나라의 형세가 이미 기울어졌음을 깨달은 경순
           왕은 백성들을 무모한 전쟁으로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없다는 생각에 국서(國書)를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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