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0 - 삼척김씨대종회보2005창간호_Ne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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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건에게 보내 신라를 양도하겠다는 뜻을 전하다. 태자는 아버지의 처사에 불만을 품고
만류하려다 실패하자 그를 따르는 충신들과 어머니인 죽방부인, 태자비, 덕주공주 등의
일행을 이끌고 천년사직 서라벌을 떠난다. 비록 경천순민(W®民)으로 고려에 나라를 넘
겼지만 사랑했던 아들 태자와 며느리, 그리고 아내와 딸이 한꺼번에 곁을 떠나 버리자 경
순왕은 그 해 11월, 개경으로 가 왕건의 장녀 낙랑공주와 혼인하면서 비통함을 달랜다.
왕건은 경순왕에게 식읍(食邑) 8천호의 경주를 다스리게 했으나 941년부터 돌아가시
때가지 경주를 떠나 제천의 이궁(離宮)과 원주 용화사, 태고사, 용문사, 괴산의 성주사 등
에 거주하시다 978년 4월 4일 송도 유화궁에서 향년 97세로 한 많은 생을 마감한다.
왕릉을 송도와 가까운 이 곳에 마련한 것은 부인인 낙랑공주 때문이었기도 했겠지만
이 곳 산세(山勢)가 문외한인 우리가 보아도 범상치 않다. 삼척 정라항에 ‘척주동해비’를
세운 미수 허목 선생의 묘나 조선조의 무신으로 임진왜란 때 부산에서 왜군을 맞아 싸우
다 전사한 정발장군과 경상좌도 병마절도사로 역시 임진왜란 때 선전했던 박진장군의 묘
도 멀지 않은 곳에 자리를 잡고들 있다.
간단한 제상 앞에서 후손들이 무릅 꿇고 천년의 먼 세월을 헤아리는 머리위로 가을 햇
살이 눈부시게 내리 쏟는다.
대왕의 손자 중 유일한 군왕(郡王)인 위옹께서 삼척에 계시는데 할아버지 경순왕은 너
무 멀리 계시어서 찾아 뵙기가 이렇게 힘든가 보다.
경순왕릉 참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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