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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КОРЕЙСКИЕ НАРОДНЫЕ ВЕСТИ 겨레일보 2018.09.28(금) NO.4015
■ 겨레일보 특별기획-러시아 한국어교육의 실태와 발젖방향 ▶2부/ 한국어 교육의 성잨기
▲ (왼쪽) 1995년 고려인연합회 주최로 열린 광복젚 50주년 행사 교민신문 <브메스쩨> 기사. 모스크바에서 발행된 한글로 된 주간신문으
로 지금은 발행되지 않는다. (오른쪽) 1998년 모스크바 1086 한민족학교 강당에서 개최된 삼일젚 기념식. 두번째 열 가운데 검은 한복 차
림이 삼일문화원 원잨 이형근 목사. 하단열 오른쪽에서 다섯번째가 엄넬리 교잨. 당시 삼일젚 행사는 한민족학교에서 계속 치러졤다.
<겨레일보=박종권기자 www.koreans.ru> 한편 2000년 전까지만 해도 모스크바지 잊혀진 채 살고 있는 한인들을 위해 단순
초기 제정러시아시대 페테르부르그대학 최 역에서는 대학에 한국어전공 학과는 하나도 한 교육 이상의 문화 사업으로 폭넓게 일
초 한국어강좌 시작은 외국인 바로 러시아인 없었다. 고영철 카잔연방대 한국학 소장은 을 추진했다.
들을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나라가 없었던 자신의 논문에서 당시 "한국어를 제2외국어
일제시대와 구소련시대를 지나면서 한국어는 강좌로 개설한 대학으로는 모스크바국립대학
주요과목이 아닌 부수적인 언어로 하락했다. 교, 국제관계대학, 모스크바국립언어대학,
더욱이 연해주에 수많은 민족학교들이 있었 고리끼문학대학, 모스크바인문대학이 있었다
지만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를 당하면서 구 "고 밝히면서 강제이주의 출발지 극동에
소련 한인들에 있어서 한국어교육과 역사는 서는 그보다 앞서 "1992년 유즈노사할린스
세대를 거듭할수록 잊혀져 갔다. 크 제9학교, 1994년 사할린 사범대학 동양
이런 과정에서 90년 한소수교 이후 러시아 학부에서 영어-한국어전공 8명의 졸업생이
한국어교욱에 있어 한민족의 정체성을 지키 최초로 배출되기 시작했다"고 적고 있다.
는 것이 러시아인 대상 보다도 더 중요한 과 또 "이후 블라디보스토크 극동국립대학교,
제로 등장했다. 여기에 선두주자로 나선 사 우수리스크 국립사범대학, 하바로브스크 등
람이 엄넬리 선생. 극동 연해주지방의 대학들에서 발전하고 있
엄넬리 선생은 한민족 자체의 정체성을 지 는 한국에 관심을 갖고 앞다투어 한국어강좌
키기 위해서는 한국어교육이 절대적이라는 를 개설하기 시작했다."고 개방 이후 초기 한
생각하에 어려운 과정을 겪으면서 1992년 초 국어교육의 사정을 소상히 밝히고 있다.
중고를 합친 11년 과정의 러시아 국립 한민 그리고 초창기 주러한국대사관 한국문화원,
족학교라는 이름으로 문을 열었다. 러시아 원불교 모스크바원광학교, 모스크바장로교회
수도에서 제도권의 학교로 열었다는 데 큰 를 비롯한 여러 개신교 교회에서 동포들과 ▲ 1992년 한민족학교를 세운 엄넬리 교
의의가 있다. 러시아인들을 대상으로 한국어강좌가 개설되 잨의 잒서젖 표지모습. 책내용에는 스탈린
이로써 본격적으로 동포 자녀들과 러시아 어 운영되었다. 시대 한민족의 강젯이주를 거치면서 젨착
등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교육이 동시에 시작 초기 한국어교육의 성장기에 특이할 만한 하기까지 어려운 과젨이 잚 설명되어 잉
되었다. 사항은 이형근 목사의 활약. 그는 역사에서 으며 한민족학교 건립과 그간의 한국어
민족교육의 과젨이 잚 드러나 잉다.